경찰은 세월호 참사의 배후 책임자인 유병언 씨의 시신을 확보하고도 단순 변사자로 처리해 40일 만에야 신원을 확인했다. 시신이 발견된 날짜와 장소, 유류품을 감안하면 유병언이 아닌지 의심했어야 하지만 경찰은 그런 상식조차 없었다. 경찰의 처리를 지휘한 검찰도 무능하긴 마찬가지였다. 검경은 죽은 유병언을 쫓느라 수사력을 허비했다.
검찰은 유병언이 은신한 별장을 급습할 당시 그가 벽으로 위장된 곳에 숨어 있었는데도 찾아내지 못했다. 검찰은 뒤늦게 이곳에서 8억3000만 원과 미화 16만 달러를 발견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태만했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현장 판단을 잘못한 해경, 우왕좌왕했던 정부를 다시 보는 듯하다. 정부는 어제 부실 수사의 책임을 물어 전남지방경찰청장을 직위해제했지만 국민들은 또 한 번 깊은 실망감에 빠졌다.
그제 강원 태백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는 21년 경력 기관사의 부주의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관사가 신호기만 제대로 봤더라도, 철도교통관제센터가 관제만 제대로 했더라도 이 같은 인재(人災)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 대부분은 실수, 부주의, 안전 불감증이 주요 요인이었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늘로 100일째다. 이 사고는 직업윤리를 저버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기업과 기업주의 탐욕, 불법 탈법 부실을 알고도 눈감아준 관피아, 정부의 무능이 빚은 종합판 인재였다. 사고 이후 대통령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4월 16일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달라질 가능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가안전처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과 관피아 척결 등 국가 혁신의 기본 방향을 밝혔다. 정부는 후속 대책으로 27개 과제를 제시했지만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선박 탑승객 신분 확인 등 7개에 불과하다. 입법을 거쳐야 추진이 가능한 정부조직 개편과 공직사회 개혁, 관피아 척결 등을 위한 각종 법안들은 국회에 묶여 있다. 안전 강화를 위한 법안들도 다르지 않다.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도 수사권 부여 문제로 여야가 대치하는 바람에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본보 기자가 전문가와 함께 동승해 점검해본 연안 여객선의 안전 실태도 이전과 그대로인 것이 적지 않았다. 화물차량의 고박은 여전히 부실했다. 선내 방송과 영상을 통해 구명조끼 착용법과 비상시 탈출 방법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지만 승객들은 무관심했다. 이런 안전 불감증이 이곳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는 안전점검도, 재난 대피 훈련도 태반이 건성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래서야 국가혁신을 이루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