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된 분들의 영혼을, 자식 잃은 부모님들을, 친구와 제자를 잃은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오직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그것만이 저 안타까운 영혼들에게 바치는 진정한 송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반 위 구도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68)는 미리 배포한 인사말에서 이렇게 연주회의 취지를 밝혔다. 24일 오후 7시 반 제주항 7부두 간이무대에는 오로지 피아노 한 대가 전부였다. 이날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되는 날.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분위기 속에 거장 백 씨의 얼굴은 석양으로 노을이 졌고, 손은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무료 초청을 받은 청중 700여 명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베토벤 비창 소나타 13번 2악장, 죽은 자식을 앞두고 비탄에 빠진 어머니에게 즉흥 연주로 위로했다는 베토벤의 이야기처럼 피아노는 어느 때보다 깊은 울림을 전해줬다. 리스트의 짧은 곡 ‘잠 못 이루는 밤, 질문과 답’은 허공과 바다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며, 하나님을 향해 고통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날 연주를 한 여섯 곡 가운데 마지막 두 곡은 백 씨가 위로와 대안으로 제시한 음악이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 3년 중 ‘힘을 내라(Sursum Corda)’는 단단한 화음이 지속되며 용기를 준다. 마지막 곡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백 씨는 “강렬한 사랑이야말로 슬픔을 이긴다. 음악적으로 이 이상 말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백 씨의 진정이 피아노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관객들의 표정도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들 특유의 공감과 연민으로 물들었다. 제주시에서 온 고영림 씨(53·여)는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트라우마였다. 오늘 공연은 진혼이자 위로였다.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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