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정파적 대립으로 특별법 제정 거듭 무산
오히려 갈등-국론 분열 부채질
黨政, 수사권 일부 부여-특검 등 실질적 대안으로 野 설득해야
野도 선거전략으로 접근한다는 세간의 지적에 귀 기울여라
이내영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부의 성공과 민주주의의 질은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 정부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국정운영을 하기가 어렵고 정부 정책의 실패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신뢰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쉽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신뢰의 위기에 빠진 형국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 부처와 해경의 무능과 무책임, 관료와 이익집단 간 유착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가 일거에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난 현재까지 실종자 수습은 물론이고 진상규명부터 보상대책, 유병언 수사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정부, 수사기관, 국회 등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지고 사회 전반에 무기력증이 팽배한 느낌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과 국론분열의 양상도 기저에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여야의 입장 차이로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거듭 무산되면서 급기야 유가족 대표들이 나서서 특별법안을 발표하고 농성과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른 일각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지면서 국론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특별법 반대진영은 유가족 대책위가 특별법을 제안하고 진상조사 기구에 유가족 대표의 참여와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를 요구하는 점은 전례가 없고 지나친 행태라고 비판한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데는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의 미미한 성과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진상조사 기구만으로는 세월호의 진실이 덮이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유가족들은 생업을 뒤로하고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린다면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해법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행태와 정파적 대립이 오히려 세월호로 인한 갈등을 부추기고 대책 마련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마련한 세월호 특별법에는 희생자 전원 의사자(義死者) 지정, 피해 학생의 대학 특례입학 등 파격적인 보상 대책이 포함됐다. 상당수 국민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결국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행태 때문에 세월호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원하는 유가족이 자칫 이기적 집단으로 비치지 않을지 걱정이다.
특별법을 둘러싼 국론분열을 피하고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회복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정치권은 조속히 타협안을 마련해서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 여당은 민간인 중심의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법체계를 흔들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진상규명과 책임소재를 밝힐 수 있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서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상조사위에 동행명령권, 계좌추적권 등 수사권 일부를 부여하는 등의 실질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특별검사제를 별도로 운영하는 대안도 검토해야 한다.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을 현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정치적 기회나 선거 전략으로 접근한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사법체계를 흔들고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행태는 결국 야당에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이 약속한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등을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 현 정부는 지난 두 달여간 반복된 인사실패로 흔들리면서 세월호 후속 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정부가 이제라도 세월호 진상규명은 물론이고 한국사회의 누적된 비리와 부패구조를 청산하기 위한 적극적 의지를 천명하고 실행 방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인 박근혜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이미지였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현 상황은 역설적이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정부가 성공하기는 어렵다.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장기화되면 법치와 민주적 질서가 위협받게 된다. 정부는 물론이고 여야 정치권이 세월호 대책을 둘러싼 국론분열과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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