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광목]“고난 속에서도 침착함을 명예로 여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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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목 미국 시애틀 거주 회계사
이광목 미국 시애틀 거주 회계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여 일이 지났습니다. 유족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평정심을 회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참담한 비극 앞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신 유족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그동안 보여준 여러 가지 말과 행동에 대해 차분히 정리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선 모든 책임을 정부에만 지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로 행진하여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한 것도 지나친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정부를 여러 개 부처로 나누어 일을 담당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런 대통령이 제대로 장기적인 국정 어젠다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제가 살고 있는 미국 시애틀 근교에서도 세월호 사고 발생과 비슷한 시기에 대형 산사태가 발생하여 잠자던 주민 43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습니다. 워싱턴 주 인구가 약 700만 명이니 인구 대비 상대적인 피해 규모는 세월호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는 대형 참사였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현장을 찾았습니다. 사고 원인은 산사태 빈발 지역에 건축 및 벌채 허가를 내준 당국과 건축업자의 잘못으로 밝혀졌지만 여기 사람들 아무도 주지사나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고 시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한국은 세월호 특별법으로 논란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법의 근본 취지는 동일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데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법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안전규정이 없어 일어난 것이라기보다는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것 아닌가요. 이왕 법을 만들기로 했다면 상식과 보편적인 가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선 추모공원을 건립하는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도 비극적으로 희생되었거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아이들을 기리기 위해 부모가 추모시설이나 도서관을 건립하는 예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건립 비용은 전적으로 희생자의 부모들이 부담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감동을 받겠지요. 배상금을 정부가 지급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사고에 대한 배상은 보험회사와 사고를 일으킨 회사에서 하는 것이 세계 모든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공통 원칙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의사자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사자란 공공의 목적이나 정의 또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이타적 동기로 자발적으로 생명을 포기한 사람들 아닌가요.

운명의 여신은 시련과 고난을 불쑥불쑥 우리 앞에 던집니다. 누구도 그것을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참모습입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담담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의 참모습과 인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말레이시아 민간항공기 격추 사건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한 네덜란드 국민들의 태도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차분한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로테르담에서는 야외 일렉트로닉 음악축제인 ‘크레이지 섹시 쿨’ 페스티벌이 예정대로 열렸고 사고 이후에도 취소된 행사는 없었다고 로테르담 시는 밝혔습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네덜란드인은 고난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걸 명예로 여긴다”고 전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대부분 한국민들은 세월호로 희생된 어린 생명들을 자기 자식이 변을 당한 것처럼 비통해하고 있습니다. 유족 여러분이 차분하게 이성과 냉정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남의 불행을 자기 고통으로 아파한 국민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광목 미국 시애틀 거주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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