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학생 6명, 세월호 선원재판서 증언
비상구에서 구조 기다리던 친구들… 파도 치자 배 안으로 휩쓸려 들어가
해경보트 비상구 진입 시도도 안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살아남은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사고 당시 ‘배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 때문에 대피가 늦어져 희생자가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탈출 과정에서 세월호 승무원이나 해양경찰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비상구나 복도 등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파도가 몰아치면서 배 안으로 휩쓸려 들어가 상당수가 실종됐다고 증언했다.
28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임정엽) 심리로 열린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 현장. 단원고 생존 학생 6명이 처음으로 증인으로 사고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이날 재판은 학생들이 안산에 살고 있고 사고 후유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해 광주 재판부가 안산지원에서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정에는 재판부와 검사 5명, 피고인 측 변호인 8명이 참석했고, 가족과 취재진 등 10명만 방청이 허용됐다.
재판에 나선 학생들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모두 교복 차림에 손목에 4월 16일 참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의 ‘remember 0416’이라고 적힌 노란 팔찌를 차고 있었다. 학생들은 당초 법정 옆에 마련된 증인지원실에서 화상 증언을 할 예정이었지만 재판부의 설득에 1명을 제외한 5명이 법정에서 진술했다.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친한 단짝 친구나 선생님이 나란히 앉아 증언을 도왔다.
이들 단원고 학생은 세월호 침몰 당시 모두 4층 선미 좌측의 SP1 객실에 있다가 탈출했다. 당시 선실에 머물던 A 양은 “배가 기울면서 캐비닛 등과 함께 한쪽으로 처박혔다. 위협을 느껴 친구들과 모두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와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고 진술했다. 이어 “방에 물이 차오르면서 친구들이 밀어주고 끌어주고 해서 가까스로 방 밖으로 나와 비상구를 통해 바다에 뛰어들었다”며 “탈출 직후 나머지 10여 명의 친구는 파도에 휩쓸려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며 울먹였다. 나머지 생존 학생들도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가 바닷물이 몰려와 서로 도와가며 탈출에 성공했지만 승무원이나 해경의 도움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한 학생은 “물이 차올라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는데 에어포켓이 생겨 한동안 숨을 쉴 수 있었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했다”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세월호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많은 학생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린 세월호 선미 왼쪽 비상구 앞에는 해경이 고무보트를 타고 출동했지만 바다에 뛰어든 학생들만 건졌을 뿐 비상구 안으로 진입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생존 학생들은 지적했다.
사고 당시 SP1 객실에서 세월호 중앙의 B22 객실에 놀러갔던 B 군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기다리는 중 다른 친구 한 명이 ‘빠져나가자’고 했다. 그렇게 7명 중 2명만 아저씨들이 내려준 호스와 커튼으로 만든 줄을 잡고 배 우측 갑판으로 겨우 탈출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세월호가 기울고 있는 상태에서 선실에 물이 들어오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겠느냐는 재판부와 검찰의 질문에 “캐비닛 등 집기 등을 밟고 올라 주위에서 신속히 도와줬더라면 더 많은 학생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사고 당시 비상벨을 울리지 않았고 운항에 앞서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비상시 대피교육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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