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당시 방에서 복도로 나왔는데 건너편 친구랑 눈이 마주쳤어요. 그 친구는 끝내 못 나왔어요. 지금도 바닷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 떠올라서…(울먹임).”(여학생)
“만약 방송에서 ‘침몰 중이니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으면 더 많은 인명이 구조됐을 거라고 보나요?”(검찰)
“안내방송만 했어도 전부 살아 나왔을 겁니다. 뉴스에서 보니 승무원들 처벌이 1600년 나오던데 그것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세월호 침몰 당시 헬기 구조를 도운 남학생)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29일 이틀째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법정증언을 계속했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공판에선 생존 학생 16명이 증언을 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대기하라’는 선내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탈출한 학생들은 일부나마 목숨을 건졌지만, 안내방송을 믿고 해경을 무작정 기다린 사람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단원고 학생 6명에 이어 이날 증언에 나선 학생들은 “대피 방송이나 빨리 탈출하라는 지시만 있었어도 많은 친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해경의 도움은 거의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4층 B28 선실에 머물던 A 양은 “안내방송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혼자 방에 있는데 옆방에 있는 아저씨들이 전해준 구명조끼를 입고 커튼으로 만든 로프 등으로 갑판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해경이 갑판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검찰 측이 “배 안에 친구들이 있으니 내려가 달라고 말했느냐”는 질문에 “해경이 위에서 다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아래에서 친구들이 ‘구해달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해경은 내려가지 않았다. 한 친구로부터 해경이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은 올라오라’는 말만 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B23 선실에서 나왔다는 B 양은 “갑판에서 헬기를 탈 때만 해경의 도움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C 양은 “갑판에 있던 해경이 (구조는 않고) 가만히 있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했고, D 양은 “해경은 갑판 외벽에 서서 헬기로 올려주기만 했을 뿐 생존자들이 빠져나오던 출입구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B20 객실에 있던 E 양은 “방안에 있다가 물이 들어와 친구들과 함께 복도로 피했는데 박지영 (승무원) 언니가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했다. 이후 언니는 로비 쪽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이를 돕지 못했다”며 흐느꼈다.
재판부가 한 여학생에게 “바다 옆에 구명보트나 구명벌이 있다면 뛰어들었겠느냐”고 묻자 한 학생은 “당연히 뛰어내렸을 것이다. 바다가 눈앞이고 배에서 미끄러져 내려가기만 하면 됐다. 파도도 잠잠해서 별로 안 무서워 보였다”고 전했다.
증언한 학생들은 “(친구들은)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게 아니다. 사고 후 대처가 잘못돼 죽은 것이다”라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승무원들을 엄벌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가위에 눌리는 등 자다 깨기 일쑤다. 친구들을 생각하면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지울 수 없다. 죽어가던 친구의 슬픈 얼굴을 잊을 수 없다. 평생 짐이 될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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