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와 어제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절절한 증언이 이틀 동안 이어졌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은 용기를 내어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털어놨다. 광주지법에서 멀리 경기 안산까지 증언을 들으러 온 재판부도 착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세월호 재판 과정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엽기적인 도피 행적에 가려 크게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역사적인 재판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를 침몰시켰던 추잡한 비리들,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손 하나 제대로 못 쓴 부실한 구조 과정의 책임을 하나하나 따지는 진실 규명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들여다보면서 이제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되새기는 재판이기도 하다.
세월호 재판은 진행 절차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다. 광주지법의 재판은 두 개의 법정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호 법정에서 재판이 열리면 204호 법정에서도 화상을 통해 재판 진행 장면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재판을 보기 위해 먼 곳까지 찾아온 피해자 가족들을 배려한 조치다. 그제와 어제는 ‘출장 재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판을 열어 가면서까지 피해자인 생존 학생들의 증언을 직접 들었다.
이런 재판 진행 방식은 한국 사법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피해자의 재판 참여를 소홀히해 온 법원이 이번처럼 피해자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배려한 적은 없었다. 이런 모습이 우리 법원에 관행으로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점에서 임정엽 부장판사를 비롯한 재판부에 감사드리면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세월호 재판의 전 과정을 지금부터라도 영상녹화를 해두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요청이다.
형사소송법 제56조의 2는 ‘법원은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판정에서의 심리의 전부 또는 일부를 … 영상녹화하여야 하며,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직권으로 이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가 마음만 먹으면 재판의 전 과정을 녹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번 세월호 재판에 견줄 수 있는 재판이 있다면 ‘성공한 쿠데타’를 처음으로 단죄했던 1996, 1997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 정도다. 필자는 일선 취재기자로 있을 때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열린 법정을 수없이 드나들며 취재한 경험이 있다. 취재수첩이 하루에도 몇 권이나 동날 정도로 받아 적어 가며 수많은 기사를 썼지만 아쉬움이 컸다. 당시 재판부는 언론의 요청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법정에 서있는 장면을 잠시 촬영하도록 허용했으나 재판의 전 과정을 녹화해 놓지는 않았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의 변명과 참회의 증언들, 그들의 표정과 음성, 법정 안을 가득 메운 열기 등 역사의 진실을 규명해가는 장면 하나하나를 글로만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이 재판의 모든 과정을 녹화해두고 10년 뒤, 20년 뒤에라도 후손들이 볼 수 있게 해놓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일정 기간 후 외교문서의 비밀을 해제하듯이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생중계라도 해서 분을 풀고 싶지만 ‘여론재판’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으니 그건 접는다 하더라도 세월호 재판장께서는 지금이라도 재판의 모든 과정을 영상녹화하는 것을 검토해 보는 게 어떨지 제안한다. 그렇지 않아도 광주지법의 재판은 보조법정으로 화상 중계를 하고 있으니 ‘녹화버튼’ 하나만 누르도록 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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