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은 31일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전날 7·30 재·보궐선거 경기 수원병(팔달)에서 정치 신인에게 패배한 뒤 하루 만이었다. 이날 낮 손 고문과 오찬을 한 일부 의원이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며 만류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21년의 정치 여정을 마감할 만큼 이번 패배의 충격이 컸던 것이다.
손 고문은 기자회견에서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신념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 했던 모든 짐을 이제 내려놓는다.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저녁이 있는 삶’은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때 내세웠던 캐치프레이즈였다.
기자회견에는 신학용 조정식 김동철 우원식 최원식 김민기 등 계파 의원들과 보좌진 10여 명이 함께했다. 일부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손 고문은 경기고 출신으로 서울대를 다녔던 조영래 김근태와 함께 ‘서울대 학생운동권 3총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던 1993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YS)의 권유로 경기 광명을 보궐선거에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거치며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현 여권의 대선주자 ‘빅3’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07년 3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당적을 옮겼다. 이어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정치 여정은 부침을 거듭했다. 2011년 4월 ‘천당 밑의 분당’이라고 불리는 경기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유력한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합리적 중도 성향의 리더십으로 이후 통합을 주도했지만 이듬해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의원을 앞세운 친노(친노무현) 세력에게 패배했다. 손 고문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정치권 재기를 노렸지만 그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손 고문의 정계은퇴 선언은 당내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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