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이정현만큼 진정성 보였나… 이변 아닌 사필귀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일 03시 00분


[재보선 이후/지역주의 허문 호남 표심]호남 민심 직접 들어보니

다시 일상으로 선거가 끝나면 또 다른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7·30 재·보궐선거 다음 날인 31일 광주 광산구 수완지구에서 주민센터 직원들이 선거구에 설치된 벽보를 치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다시 일상으로 선거가 끝나면 또 다른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7·30 재·보궐선거 다음 날인 31일 광주 광산구 수완지구에서 주민센터 직원들이 선거구에 설치된 벽보를 치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미니 총선’으로 불린 7·30 재·보궐선거의 주인공은 전남 순천-곡성에 ‘빨간 깃발’을 꽂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다. 1988년 소선구제 도입 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전남에서 새누리당 계열 국회의원이 탄생하다 보니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 의원의 승리를 두고 ‘지역구도의 벽을 허무는 단초’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남 순천-곡성 유권자들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더이상 호남이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이 아님을 보여줬다. 호남 민심은 “국민의 이름으로 새누리당에 경고해 달라”는 새정치연합에 되레 ‘경고’를 보낼 정도로 냉정했다. 새정치연합을 향한 호남 민심의 회초리는 매섭기만 했다.

○ 새정치에 없던 ‘호남 진정성’

“이변이 아니라 이정현 후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였어요. 근데 이런 사실을 당(새정치연합)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

전남 순천시 조례동에 사는 서모 씨(51)는 31일 야당이 이번 순천-곡성 선거구에서 참패한 원인을 “당이 눈과 귀를 닫은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부터 새정치연합까지 일편단심이었던 야당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몇 번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결과”라며 쓴소리를 했다. 사실 호남 민심은 지난 6·4지방선거의 전남·북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총 36개 선거구 중 15곳에서 야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키며 ‘옐로카드’를 내민 바 있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악재가 겹치며 야당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순천-곡성 선거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역 유권자들은 끈질긴 호남 도전 정신을 보여준 이 의원을 만나 ‘표심 반란’을 일으켰다.

순천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이모 씨(47)는 “당 지도부 지원유세도 마다하고 홀로 자전거 유세를 펼치는 등 진정성을 보인 것이 결국 승리의 요인”이라며 “새정치연합은 호남에 그런 진정성을 갖고 접근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정찬영 조선이공대 교수(53)는 “이 의원의 당선은 야당 의원도 (호남에서) 얼마든지 낙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야당의 텃밭이고 공천장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에서 당선된 야당 후보도 성난 민심을 전했다. 담양-함평-영광-장성 선거구에서 당선된 새정치연합 이개호 의원(55)은 이날 당선 인사를 다니면서 ‘축하한다’는 덕담보다는 ‘당이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혁신 없는 당엔 더이상 표를 주지 않겠다는 민심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며 “이제 막 의정활동을 시작하는 초선 의원으로서 발걸음이 무겁다”고 털어놨다.

○ 성난 민심이 깨버린 지역구도

지역민들은 이 의원의 당선을 고질적 지역주의의 벽을 허무는 ‘한국 정치사의 사건’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최양호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55)는 “여야를 넘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지역정치를 넘어서는 하나의 발판을 마련했다”며 “2014년 호남 민심은 선거혁명을 통한 지역구도 타파, 진정한 민주정치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 사는 김영여 씨(62)는 “이 의원이 당선되고 난 뒤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니 지역화합을 바란다는 말이 많았다. 지역발전과 동서화합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 극복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는 기대감도 컸다. 광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철원 씨(47)는 “이 의원이 2012년 총선에서 광주 서구에 출마했을 때 호남에서부터 새로운 정치문화를 확산시켰으면 하는 바람에 한 표를 찍어줬다”며 “우리 정치가 바뀌려면 이정현 같은 사람이 영호남에서 앞으로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의원의 당선이 지역구도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갖지는 못할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정현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45·전북환경운동연합사무처장)은 “여당 불모지에서 국회의원 한 사람이 당선됐다고 해서 수십 년간 견고하게 쌓인 지역주의 벽이 허물어지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지역구도가 완화되기 위해서는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여당이 이 의원의 당선을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남 무안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김승태 씨(45)는 “이 후보의 당선을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승리에 도취해 국가개혁을 등한시한다면 민심은 다시 떠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새누리당#이정현#호남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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