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국민들은 운하가 미국 관리하에 있던 85년(1914∼1999년)동안 분단국가, 식민국가에 사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나라 안에 다른 나라가 들어와 있는 듯한 불쾌한 감정이었죠.”
7일(현지 시간) 파나마시티에서 만난 미겔 로드리게스 파나마운하청 감독관위원회 위원장(56·사진)은 ‘파나마 운하 100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미국의 운하 관리 지역은 철저히 미국법이 적용됐다. 파나마 국민이 미국 관할 구역에서 법을 어기면 파나마 법정이 아닌, 미국 법정에 서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99년 파나마 운하가 파나마 소유가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로드리게스 위원장은 운하청 간부 중 입지전적 인물이다. 17세에 견습공으로 입사해 2년 뒤 파나마 최고 인기 직업 중 하나인 ‘파나마 파일럿(운하에 들어온 배를 이끄는 도선사)’이 되기 위해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최고참 파일럿 중 한 명인 그는 현재 파나마 운하 통행 검사의 총괄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파나마가 운하를 직접 운영한 지난 15년간 무엇이 달라졌나.
“파나마로서는 15년간 수입이 85년간 수입보다 많다. 지난해 운하 수입 24억1000만 달러(약 2조4900억 원)는 2001년(5억8000만 달러)의 약 4배에 이른다. 반면 각종 사고는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런 변화 덕분에 운하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아졌다.”
―태평양과 대서양 쪽 수문을 추가로 만드는 ‘제2의 파나마 운하’ 공사가 진행 중이다. 53억 달러(약 5조4900억 원)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운하청 내에 ‘60명의 대국민 소통팀’을 2005년에 구성해 1년 넘게 가동했다. 나도 멤버였다. 새 운하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학교 회사 신문사 방송국은 물론이고 해외로도 갔다.”
―그래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세력이 있지 않았나.
“그런 세력과 공개 대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들이 정치적 주장을 할 때 소통팀은 구체적 수치와 사실을 제시하며 국민을 설득했다. 정치색은 철저히 배제했다. 고객인 국민이 이 프로젝트를 ‘사도록(buy)’ 만들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만 생각했다. 그 결과 2006년 찬반 국민투표에서 78%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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