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생각]<6>왜 어떤 사람은 잘 살고 어떤 사람은 못 살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2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하고, 똑똑하고, 매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잘 사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자식들도 대체로 부모와 비슷해서 잘 산다. 상대적으로 잘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자식들도 대체로 어렵게 산다. 이런 과정이 오래 이어지면, 사회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점차 늘어나고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점차 줄어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사실이 진화의 일반적 모습이다. 부모의 특질들이 자식들에게 유전되고 그 특질들의 우열이 자식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찰을 사람에서 전체 생태계로 확장하면, 어엿한 진화론이 된다.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들은 점점 사라지고, 잘 적응한 생명체들은 후손들이 퍼져나간다. 이른바 ‘자연 선택’이다. 이런 관찰에 바탕을 두고 생명의 발생과 진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 그를 열렬히 지지한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탄식했다. “이처럼 뻔한 것을 내가 몰라보았다니!”

○ 유전의 단위, 유전자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보인다. 무엇이 진화하려면, 오래 존속해야 한다. 이내 사라지면, 자연 선택이 작용할 틈이 없다. 게다가 개인들은 끊임없이 바뀐다.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몸을 반씩 물려받았으나, 자식은 부모와 분명히 다른 존재 아닌가. 따라서 사람 개인은 진화의 단위가 될 수 없다.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진화의 단위는 무엇인가. 답은 멘델의 유전 연구에서 나왔다. 사람이 지닌 수많은 특질은 부모 각자의 것이 따로따로 자식에게로 유전된다. 이 유전의 매체는 유전자(gene)이다. 즉 유전자가 생명의 기본이고 진화의 단위다. 다윈의 자연선택이론과 멘델의 유전의 법칙이 결합하면서, 진화론은 비로소 온전한 이론이 되었고 다윈주의(Darwinism)라 불린다.

유전자가 생명의 기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생명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를 대부분 공유한다는 사실은 모든 생명체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주었다. 태초에 유전자가 있었고, 사람이나 박테리아와 같은 유기체는 유전자가 살아가기 위해 만든 ‘생존 기계’라는 것도 드러났다. 그래서 유기체는 일생이 다하면 사라지지만, 그 속에 든 유전자는 대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영속한다. 우리 선조들이 ‘대를 잇는 일’을 그리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생명의 본질을 통찰한 데서 나왔다. 유전자를 생명의 기본으로 보면 생명 현상이 본질적으로 ‘정보의 전달’이라는 사실도 새삼 뚜렷해진다. 유전자는 DNA로 이루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DNA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포함된 정보다. 세포의 각 기구가 그 정보를 해독해서, 우리 몸이 만들어지고 움직인다.

○ 문화의 단위: 밈


유전의 단위가 유전자(gene)인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단위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이다. 노래 가락 한 마디, 춤 동작 하나, 옷의 스타일, 시 한 줄과 같은 것들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출간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이 문화의 최소 단위들을 ‘밈(meme)’이라 불렀다.

유전자는 아주 느리게 진화한다. 오직 한 방향으로 즉 부모에서 자식으로 진화하며 아주 작은 변화라도 한 세대가 걸린다. 그래서 사람의 유전적 모습은 고대 문명이 일어난 뒤로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반면에, 밈은 매우 빠르게 바뀐다. 사람의 뇌에서 뇌로 옮겨 다니므로 방향에 제한이 없고, 동시에 수많은 사람에게 퍼진다. 통신과 교통이 발전하면서 이런 과정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밈의 진화는 빠르고 널리 퍼진다. 꼭 질병 바이러스의 창궐과 비슷하다. 유행이나 ‘히트 상품’이라는 현상은 어떤 밈이 갑자기 널리 퍼진 것을 뜻한다. 사람의 마음에 들어서 폭발적으로 밈이 번식한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그대로인데 밈은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바뀌고 널리 퍼진다.

그렇다면 유전자와 밈은 어떻게 연관이 되는가?

개체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밈은 개체 속에 든 유전자가 번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대로 개체의 생존에 해로운 밈, 예컨대 틀린 지식이나 건강에 해로운 관습은, 개체 속에 든 유전자를 쇠퇴하게 할 것이다. 즉 밈은 이렇게 개체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궁극적으로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에 담긴 지식을 우리는 본능이라 부르고, 뇌에 자리 잡은 지식은 지능이라 부른다. 본능만으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울 때, 뇌의 지능이 본능을 보완한다.

문화는 사람만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화의 바탕이 뇌이므로, 상당한 뇌 용량을 가진 동물이 문화를 누린다. 사람보다 뇌가 훨씬 큰 코끼리나 고래도 나름대로 발전된 문화를 지녔고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어느 미국 곡마단에서 동물 조련사로 일했던 사람이 은퇴한 뒤 우연히 곡마단을 찾았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마침 공연에는 그가 젊었을 적에 조련했던 코끼리가 출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끼리가 조련사를 알아보고 다가오더니, 50센트짜리 일반석에 앉아 있던 조련사를 번쩍 코로 감아 올려 2달러짜리 특별석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 진화와 시장

문화의 진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시장(市場)이다. 수많은 생산자와 수많은 소비자가 갖가지 욕구들을 충족시키려 애쓰는 곳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새로운 방식으로 공급되고, 소비자 욕구에 잘 맞는 제품과 서비스가 나오며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래서 시장에선 모든 것이 모든 면에서 빠르게 진화한다. 반면에 꽉 짜인 중앙당국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명령경제에선 진화가 나올 수 없다. 당연히 사회는 정체한다. (다음 글에선 시장에서 진화가 빨리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담긴 함의들을 살펴봅니다.)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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