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불혹에 급제한 제자에게 ‘귀거래사’ 들려준 스승의 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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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박세당 ‘서계유묵’ 수록 편지 번역 공개

《 “집안에 마소 세 마리를 먹일 한 단의 건초도 마련하기 어려운 지경이네. 자네 집에 여분의 건초가 있을 듯해서 노복을 보내네. 얻을 수 있겠는가?” (1696년 3월 16일)

“긴요하게 쓸 데가 있어서 그러니 참마 한두 단을 보내줄 수 없겠는가? 숯 서너 말도 얻었으면 하네.” (1698년 3월 23일) 》

박세당이 제자 이정신에게 써준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 나이 마흔에 힘겨운 벼슬살이를 시작하는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공
박세당이 제자 이정신에게 써준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 나이 마흔에 힘겨운 벼슬살이를 시작하는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공
17세기 조선시대 정치·사상계의 거두 서계 박세당(1629∼1703)이 60대 후반 이후 제자 이정신에게 쓴 편지 중 일부다. 산과일과 참마, 숯은 물론이고 마소에게 먹일 풀까지 온갖 살림살이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소론의 영수로 송시열과 맞서다 나이 마흔에 이조판서를 내버린 대쪽같은 성품이었지만 말년의 생활고를 홀로 감당하기는 벅찼다. 두 아들이 모두 숨지면서 일흔이 넘는 고령에도 일곱 명의 가족을 보살펴야만 했다. 극심한 흉년이 들었던 1690년대 말 이런 부탁은 웬만한 친척조차 들어주기 힘든 것이었지만 이정신은 성심껏 스승을 모셨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박세당의 ‘서계유묵(西溪遺墨)’ 가운데 이정신 등에게 쓴 편지를 번역해 처음 공개했다. 서계유묵은 박세당의 후손들이 생전 그의 시문과 편지를 모아 1750년경 낸 서첩으로, 사료로서 가치가 높아 2010년 보물 1674호에 지정됐다.

반남 박씨 종가에 전하는 서계 박세당의 영정. 17세기 조선시대 정치·사상계의 거두였던 그는 마흔 살에 낙향해 농업기술서인 ‘색경’과 ‘사변록’ 등을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공
반남 박씨 종가에 전하는 서계 박세당의 영정. 17세기 조선시대 정치·사상계의 거두였던 그는 마흔 살에 낙향해 농업기술서인 ‘색경’과 ‘사변록’ 등을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공
김학수 한중연 국학자료연구실장은 “조선시대 문집이 주로 고인의 공적인 삶을 다룬 반면 서계유묵은 박세당의 인간적인 면모와 민낯을 솔직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들을 잃은 아픔을 피 끓는 부정(父情)으로 토해낸 글은 지금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죽은 아들을 지난 윤달 땅에 묻었는데 슬프고 괴로운 마음을 감당하기가 어렵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살고 싶은 마음은 더 줄어드니 이를 어찌 하겠나”(1686년 6월 5일)

큰아들 태유가 1686년 봄 39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숨진 뒤 이정신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비통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로부터 3년 뒤 작은아들 태보마저 인현왕후의 폐출을 반대하다 유배를 떠나던 도중 목숨을 잃었다.

“이 몸에 죄가 쌓여 하늘의 화가 이토록 극심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네. 통곡하는 외에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1689년 6월 5일)

산전수전 다 겪은 대학자로서 제자를 아끼는 마음도 남달랐다. 특히 불혹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이정신에게 낙향을 권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들려준 사연이 이채롭다. 청운의 뜻을 막 펼치려는 제자에게 왜 하필 스승은 귀거래사를 써 준 걸까.

‘歸去來兮 請息交以絶遊 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돌아왔구나! 바라건대 세상과 사귐을 쉬고 벼슬길을 끊어버리리라.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났으니 다시금 멍에를 매어 무얼 구하겠는가).’

시를 쓴 도연명이 팽택 현령을 그만두고 낙향할 때 나이가 마흔. 공교롭게도 박세당이 관직을 버리고 양주 석천동(현 경기 의정부시)에 은거했을 당시 나이도 마흔이다. 평소 도연명을 흠모하던 박세당이 일부러 40세에 맞춰 낙향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조정에서 치열한 당파싸움을 겪었던 박세당은 벼슬살이의 괴로움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다. 김 실장은 “박세당은 제자인 이정신도 조정에서 수없이 부침을 겪을 것을 내다보고 언제든 버거운 짐을 내려놓을 것을 미리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박세당#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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