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살리려 750억 들인 나들가게… 1만11곳중에서 1086곳 폐업-가맹취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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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구매 미비로 경쟁력 못갖춰… 일반 슈퍼 폐업률과 비슷한수준

정부가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해 만든 ‘나들가게’ 사업에 최근 5년간 750억 원이 지원됐지만 1000개 넘는 점포가 폐업 또는 가맹을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맹 취소 점포 수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을 고려하면 나들가게의 폐업률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은 일반 동네슈퍼와 큰 차이가 없다.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초부터 2014년 6월까지 개점한 나들가게 1만11곳 중에서 1086곳이 문을 닫거나 나들가게 사업 가맹을 취소했다. 나들가게 중 문을 닫거나 가맹을 취소한 비율은 10.8%에 달해 일반 슈퍼의 폐업률(13.6%)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청은 대형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으로부터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2010년 나들가게 제도를 도입하고 올해 6월까지 예산 750억 원을 투입했다. 개별 점포가 신청해 나들가게로 선정되면 정부가 간판 교체, 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POS) 설치, 경영컨설팅 비용 등 약 660만 원을 지원해 준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시행 첫해인 2010년 나들가게가 된 서울 마포구 만리재로 ‘정슈퍼’는 매출이 전보다 다섯 배 뛰면서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이전의 매출을 회복했다.(본보 2010년 9월 29일자 B1면 참조) 우수 지원 사례가 공개되자 신청이 봇물을 이뤘다. 시행 첫해인 2010년 2302개, 2011년 3005개, 2012년 4704개 동네슈퍼가 나들가게 간판을 새로 달았다.

그러나 시행 1년 뒤부터 폐업과 가맹 취소가 속출했다. 2013년 나들가게를 떠난 동네슈퍼(593개)는 2011년(205개)의 두 배가 넘었다. 가게 문을 닫은 점포주 91%는 폐업의 가장 큰 이유로 ‘경영 악화’를 들었다. 인테리어를 새로 했지만, 공동구매 시스템이 미비해 대형마트나 인근 편의점의 가격경쟁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은 나들가게의 유통 지원을 위해 만든 중소유통물류센터도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정슈퍼’를 운영하는 김성국 씨(42)는 “우리 가게도 경기 영향으로 매출이 주춤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들가게가 되기 이전보다는 낫다”며 “그런데도 며칠 전 편의점 운영 제의를 받고 (교체를) 고민하고 있다. 물품 구입이 편리하고, 각종 할인이벤트도 많아 부럽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에 중기청은 올해 나들가게 정책을 완전히 바꿀 계획이다. 개별점포 인테리어 비용 등은 85만 원으로 줄이고 공동 물류시스템 혁신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현재 나들가게가 편의점 1위 업체 가맹점보다 많다”며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해 올해 말까지 공동구매 시스템을 만들어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포스에서 중소유통물류센터에 물건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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