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동원-위안부 연행 등… 전쟁의 비참함 알리던 설명문
우익 문제제기에 잇따라 철거돼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은 야마토(大和) 해군항공대 기지(일명 야나기모토·柳本 비행장)를 나라(奈良) 현 덴리(天里) 시에 세우면서 조선인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 냈다. 조선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 짐승 다루듯 기지건설 작업에 마구 투입했다. 그 기록은 1995년 제작된 유적지 안내 간판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이라는 짤막한 문구로 남아 있었다. 또 ‘위안소에 여성이 강제로 연행돼 왔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간판이 세워진 뒤부터 덴리 시청 민원 창구에는 “강제동원 근거가 없다”는 극우의 주장이 계속 접수됐다. 결국 시는 올해 4월 안내 간판을 철거했다. 그 후 “안내문의 내용이 시의 공식 견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도 밝혔다.
도쿄신문은 13일 이 같은 예를 들면서 “전쟁의 가해와 비참함을 알리는 비석과 설명문이 최근 잇따라 철거되고 있다. ‘무언의 증언자’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전쟁을 경험한 이들은 위기감을 느낄 정도”라고 보도했다.
나가노(長野) 현 나가노 시에 설치된 마쓰시로(松代)대본영 지하참호 입구에는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됐다는 내용이 포함된 안내 간판이 지금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시청은 우익의 지적을 받아들여 지난해 8월 ‘강제적으로’라는 문구 위에 흰색 테이프를 붙여 가렸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각종 유적도 하나씩 모습을 감추고 있다.
시즈오카(靜岡) 현 시마다(島田) 시에 있는 이른바 ‘제트(Z)연구’ 유적은 하천 공사 때문에 해체될 가능성이 크다. 이 유적지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 폭격기 B29에 전자파를 쏴 조종 불능 상태로 만들기 위한 연구가 진행된 곳이다.
1944년 11월 24일 미군의 공습 표적이 됐던 나카지마(中島) 비행기제작소의 변전실은 공원 정비라는 명목으로 철거 결정이 난 상태다.
오키나와(沖繩) 현 마에다고치(前田高地) 후방진지 유적은 올해 토지구획 정리 과정에서 해체됐다. 오키나와에선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지상전이 벌어졌다.
일본의 전쟁유적보존전국네트워크에 따르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히로시마(廣島) 원폭 돔을 비롯한 전쟁 유적이 일본 전국에 걸쳐 약 3만 곳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216곳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가해 역사를 알리는 유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와 과거사 부정의 영향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극우들이 유적의 문구 등을 트집 잡아 지자체에 항의를 하면 지자체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 사안은 신중하게 처리한다”며 유적 설명문을 바꾸거나 아예 없애버린다.
한편 휴가 중인 아베 총리는 고향인 야마구치(山口) 현에 귀향해 12일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묘를 찾았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용의자였다가 총리까지 지낸 기시 노부스케는 아베 총리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묘소를 찾아온 기자들 앞에서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삶을 지키겠다는 것을 새로 맹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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