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17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 교황청 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유족 이호진 씨(56)에게 직접 세례를 줬다. 세례명은 교황명과 같은 ‘프란치스코’다. 교황방한위원회 관계자는 “이 씨가 먼저 교황께 ‘프란치스코’를 세례명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고, 교황도 웃으며 ‘그게 좋겠다’고 답했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방한위에 따르면 한국 신자가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것은 25년 만이다. 1989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청년 12명에게 세례를 줬다.
교황은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의 시복식 때 유가족 400여 명이 모여 있던 C24, 25구역을 지나다가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을 직접 대면했다. 특히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호 씨(57·단원고 2학년 고 김유민 양 아버지)의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 교황은 김 씨가 건넨 노란색 편지도 윗옷 오른쪽 주머니 안에 넣었다. 약 2분간 이뤄진 ‘짧은 만남’이었지만 대중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이었다.
김형기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17일 “세월호 참사 이후 넉 달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존중받는 느낌이었다”며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교황의 표정에서 상처받은 영혼이 일부 치유됐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고 김동혁 군의 어머니 김성실 씨도 “세월호 참사가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슬펐던 게 사실”이라며 “교황께서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면서 우리 사회가 다시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날 시복식에 참석한 천주교 의정부교구 소속 배진수 씨(50)는 “세월호 사건이 어느 순간 점점 일상 속에 묻혀 갔던 것이 사실”이라며 “세월호 정국이 이어지며 여야의 대립은 물론이고 여론마저 분열됐던 상황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온 교황이 유족을 감싸 안는 순간은 무심했던 우리 모두를 반성케 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14일 서울공항에서 평신도 영접단 32명에 포함된 유가족 4명과 만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고,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앞서 유가족 10여 명과 별도의 면담을 가졌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받은 십자가를 바티칸으로 가져가겠다고 했고, 노란 리본 역시 이후 공식 행사에서 계속 달고 다녔다.
프랑스 일간 ‘라크루아’지의 후아외 셀린 기자는 “교황은 정치적 발언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도,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달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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