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황 신드롬’ 왜… 상처 치유해줄 ‘따뜻한 품’에 열광
영화 ‘명량’열풍도 리더십 갈망 작용… 18일 명동미사 마치고 한국 떠나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대한민국의 중심인 이곳은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정치사회적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 됐다. 광화문, 그 앞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을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다시 그 앞에는 긴 칼을 찬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다. 이날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1362만 명)의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을 5년 만에 넘어섰다. ‘명량’은 15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5000만 인구 가운데 세 명 중 한 명꼴로 이 영화를 보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한다.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는 교황이 소형차 쏘울을 타는 모습에 반해 나흘 만에 팬 카페가 20개 넘게 생겼다.
16일 시복식은 ‘프란치스코 마법’의 절정이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으로 남녀노소, 빈부,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 된 하루’였다. 노란 리본을 단 유족 400여 명을 포함한 80만 명(교황방한위원회 집계)이 한자리에서 교황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바티칸공식수행취재단 기자들은 한국인의 열광적인 반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 르피가로의 바티칸 출입기자인 게누아 장마리 씨는 “지난해 교황의 브라질 세계청년대회는 젊은 가톨릭 신자 중심이었고, 예루살렘에서는 무거운 정치적 긴장이 느껴졌다”며 “한국에서는 신자가 아닌 일반인에게까지 교황이 뜨거운 인기를 얻어 놀랍다”고 했다.
▼ 프란치스코-이순신 리더십 공통점은 ‘진정성’ ▼
‘프란치스코 열풍’과 ‘이순신 신드롬’의 원인은 뭘까. 최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두드러진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우선 꼽힌다. 미국 보스턴글로브의 존 앨런 기자는 “한국인은 빠른 경제성장의 그늘을 치유해줄 따뜻한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정치인들로부터 받지 못했던 ‘보살핌’의 느낌을 교황에게서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사회학을 전공한 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불안하거나 위기를 느낄 때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끌 강한 리더십을 원한다”며 “세월호 참사나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책임지는 정치인은 없었고 관료는 무능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교황과 장군의 리더십에는 차이가 있다. ‘명량’의 이순신이 죽음을 불사하는 무한책임의 리더십이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을 낮춘 소통과 화해의 리더십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통점은 두 리더의 진정성”이라며 “이순신은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해 나라를 구했고 교황 역시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벤트성이 아닌 실천이 감동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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