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글로벌 戰場을 가다] <1> 삼성전자, 아마존 시장 뚫어라
“현장서 부딪치며 브랜드 알려야” 지방 판매망-유통社공략 사활걸어
11일 오후 4시(현지 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라르구13 지역 중심가의 한 전자제품 매장. 입구에는 호객꾼들이 저마다 큰 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TV와 휴대전화 코너는 제품을 살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전자 업체 판촉 직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혼잡은 가중됐다. 기업 로고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자사 제품 상자를 매장 입구에 쌓으며 손님을 끌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나 일본 브랜드보다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제품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삼성전자 브라질법인 김창업 부장은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은 제품 전시 기준과 판매 방식이 유통 업체와 매장 운영자에 따라 제각각인 곳이 많다”며 “직접 현장에서 부딪치며 제품과 브랜드를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최고 브랜드’로 인정받는 삼성전자이지만 ‘기득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장도 여전히 남아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현지에서 매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유다.
한국 대기업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톱 티어(최상위권)’에 올랐다.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도 주요 한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전자 △자동차 △석유 △중공업 △화학 △건설 △철강 등 7개 수출 업종의 주요 기업 3곳(총 21곳)의 2009년(일부 기업은 회계기준이 바뀌어 2010년)과 지난해 해외 매출을 비교해본 결과 모든 업종에서 해외매출 비중이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전자(87.3%) 중공업(77.9%) 석유(68.4%) 자동차(68%) 순으로 해외매출 비중이 컸다.
재계에서는 중국 등 후발주자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글로벌 기업들 사이의 ‘시장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외 시장 비중을 늘리는 것은 한국 기업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생산과 판매, 고용과 동반성장 등 모든 면에서 해외 시장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 ‘수출기업’의 일자리 수 증가율은 33.7%로 ‘내수기업’(8.7%)의 4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 지방 유통업자 찾아가 눈맞추자 “아미구, 삼성”▼
대기업의 해외 진출은 중소·중견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다음 달 초 중국 광저우에 새 공장을 가동하는 LG디스플레이의 경우 10여 개 협력업체가 현지에 동반 진출했다. 미국 앨라배마 주 현대자동차 공장과 조지아 주 기아자동차 공장을 잇는 85번 고속도로 변에 한국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줄지어 선 것도 같은 예다.
해외 생산이 국내 고용을 부추기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2009년 베트남에 무선사업부 생산 공장을 세웠다. 생산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국내 고용이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제품 경쟁력이 높아져 판매가 늘면서 오히려 고용이 늘었다. 2008년 1만4400명이던 이 부서 인력은 올해 2만2000명이 넘는다. 또 베트남 현지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 25%를 국내에서 조달하면서 국내 협력업체 고용도 늘었다.
○ 유통업체들을 우군으로 만든 ‘버스 탐험’
한국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이들이 진출한 시장마다 각양각색이다. 삼성전자가 상파울루에서 겪는 ‘제 멋대로’ 전시 방식은 브라질 중소도시로 갈수록 심해진다. 판매와 마케팅 담당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매장 관리’와 ‘현장 밀착형 마케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총인구 약 5억7000만 명의 중남미는 급부상하는 신흥 시장이다. 특히 브라질은 중남미 지역에서 인구(약 2억260만 명)가 가장 많다. 1인당 국민소득도 1만957달러(지난해 국제통화기금 기준)로 이머징 시장 중에서는 높은 편이다.
권기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중남미경제)은 “브라질이 당면한 1인당 국민소득 1만2000∼1만7000달러 시기는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라며 “브라질은 또 2020∼2030년에도 인구가 꾸준히 늘 것으로 예상돼 시장 조건이 좋다”고 설명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TV,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주요 제품군에서 중남미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브라질 시장에서 판매망 강화, 현지화한 제품 개발 등에 공을 들이며 ‘지속가능한 성장 시스템’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4월과 6월, 삼성전자 브라질법인 관계자 10여 명은 버스를 임차해 브라질 북부와 남부 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찾아갔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가 아닌 지역으로도 판매망을 확대하려는 의도에서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5번째로 국토가 넓으면서 치안 사정과 교통 인프라가 열악하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라도 현지법인에 파견된 주재원들이 직접 시장 점검에 나서기 어렵다.
박경철 삼성전자 브라질법인 판매부문장(상무)은 “당시 만났던 지방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글로벌 기업 주재원들이 직접 찾아와 의견을 묻는 것에 놀라워하며 ‘아미구(Amigo·포르투갈어로 친구)’라고 치켜세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버스 탐험(지방 방문 및 현지 유통업체 직접 접촉)’을 벌인 뒤 지방 유통업체와의 업무가 한결 수월해졌다. 지방 유통업체에서 전시되는 삼성 제품의 종류가 늘고 판매 전략을 논의해오는 건수도 늘었다.
브라질법인의 ‘위성’ 역할을 하는 사무소들도 만들었다. 지난해 말 헤시피, 마나우스, 고이아니아, 포르투알레그리 등 10개 도시에 설치한 지역 사무소가 올해부터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이들은 현지에서 제품 판매, 매장 관리, 소비자 밀착형 마케팅 등을 담당하고 있다. 실비우 스테그니 삼성전자 브라질법인 소비자가전(CE) 판매담당 상무는 “브라질에 진출한 글로벌 전자 기업 중 삼성전자 만큼 많은 지역 사무소를 운영하는 곳은 없다”며 “지방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그만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제품 기획 단계부터 현지 시장 겨냥
삼성전자는 브라질과 중남미 시장을 직접 겨냥한 제품 기획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남미총괄 산하에 설치한 ‘프로젝트 이노베이션팀(PIT)’이 현지 소비자와 시장 조사를 통해 제품 콘셉트를 개발하고 있다. 임형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국제경영)는 “독특한 문화와 소비자 성향을 지닌 거대시장에서 장기적으로 대응하려면 특성화된 제품기획 기능이 현지 시장에서의 생산과 유통 역량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 간 거래(B2B) 시장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공략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정부, 금융, 호텔, 오피스, 교육, 리테일 등 6개 분야를 브라질과 중남미 지역에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B2B 시장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업용 디스플레이(LFD)를 중심으로 성과가 나왔지만 TV, PC, 스마트폰 같은 주력 제품과 소프트웨어 분야까지 B2B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전략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당 시장에 특화된 상품을 개발하느냐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글로벌 톱티어에 속하는 기업일수록 이런 부분에 대한 역량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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