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화하는 車’ 상용 초읽기… 그뒤엔 앤아버市 희생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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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 시즌2]
“미래 위해 불편 감수”… 1년간 도로 실험에 3000대 동참

“삐 삐 삐.”

경고음이 울리자 운전석에 탄 미시간대 교통연구소(UMTRI) 제임스 세이어 박사가 차 속력을 시속 30km로 낮췄다. “저기 보이는 흰색 안테나에서 보낸 메시지입니다.”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미시간대 캠퍼스. 커브길 표지판 위로 길이 10cm, 너비 20cm 정도의 흰색 장치가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실시간 온도와 습도를 계산해 기자와 세이어 박사가 탄 차량에 타이어 미끄럼 경고 방송을 보내는 전파 송수신기였다. ‘차량 무선통신 시스템’, ‘V2V(Vehicle to Vehicle)’로도 불린다. 근거리 통신 기술을 사용해 전후좌우 차량과 교통 장치 간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한 시스템이다.

이 ‘대화하는 차’들은 △주변 차량의 속도를 계산해 자동으로 속력을 조절하고 △시야를 넘어선 앞 차의 사고 혹은 급정차 정보를 바로 주행에 반영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차량이 인접할 경우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도로 표면 및 환경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 “학교로 편지 보내자”

차량 무선통신 기술 실험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앤아버 미시간대 교통연구소에 남긴 감사 메시지들. 앤아버=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차량 무선통신 기술 실험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앤아버 미시간대 교통연구소에 남긴 감사 메시지들. 앤아버=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미국 교통부는 수년간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해 왔지만 운행 차량이 최소한 2800대가 필요한 실험에 실제 착수하기가 어려웠다. 특정 기간 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실험에 참여하는 불편을 감수할 지방자치단체나 기관을 찾아내야 했다. 여러 기관을 물색한 끝에 찾아낸 곳이 앤아버와 미시간대 교통연구소였다.

앤아버 주민들이 실험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시에는 4개의 초중등학교와 2개의 고등학교가 있고 다양한 연구소와 미시간대가 자리해 학부모의 학구열이 높았다. 시와 연구소는 학교들과 아동병원에 공문을 보냈다. ‘수고료 200달러(약 20만 원)를 받고 교통안전을 위한 실험에 참여할 학부모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1년간 정해진 경로상에서 일정량의 운행을 유지하며 한 달에 두 번 이상 시 외곽에 있는 연구소에 들러 기록을 제출해야 하는 불편을 생각하면 200달러는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문에는 이 실험이 ‘앤아버의 교통사고를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전체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내용이 함께 적혀 있었다. 참가자가 원한다면 200달러의 절반은 학교와 지역 아동병원에 기부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앤아버의 실험에는 4400명의 시민이 몰렸다. 이 중 3000대가량의 차량이 실제 실험에 참여했다. 애초 필요했던 인원수보다 많았다. 대부분은 자신의 출퇴근 승용차로 참여한 학부모였지만 트럭 운전사, 버스 운전사들도 있었다. 지역의 트럭회사가 실험 참여 트럭을 제공했고 대학 내 통학버스도 장치를 달았다. 기부된 수고료도 1만2000달러(약 1200만 원)에 달했다.

○ “장치 설치하겠다” 10명 중 9명


실험은 2012년 8월부터 1년간 진행됐다. 차량 간 대화 시스템인 V2V 및 차량과 교통시설 간(V2I·Vehicle to Infrastructure) 무선통신시스템을 구축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민 참여 실험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실험은 “V2V 시스템이 잠재적 사고율을 80% 떨어뜨릴 것”이라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가설을 대부분 충족했다. 교차로 진입과 차로 변경 시 발생하는 사고를 대폭 감소시켰으며 응답자들은 사후 조사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트럭이나 사각지대의 위협 체감도가 낮아졌다고 답했다. 실험 참여 운전자 10명 중 9명이 “V2V 장치를 설치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미 교통부는 이를 토대로 올해 2월 “V2V 기술을 경차에 적용하기 위한 단계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세이어 박사는 “교통부 결정에 따라 이미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는 V2V 차량 생산 단계에 진입했다. 회사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몇 군데에서는 이미 부품 구입을 진행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V2V 차량 시험 동승을 끝내고 취재팀이 찾은 연구소 안 곳곳에는 시민 참여 실험의 모범사례를 일궈낸 앤아버 시민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노란 벽지로 꾸며진 방 한쪽 게시판에는 ‘감사합니다’라는 플래카드 주변으로 실험 참여자와 학교, 병원에서 보낸 쪽지들이 가득했다. “노스사이드에서, 소보친스키 가족이” “휴런 고등학교, 샤츠” 등의 내용이었다. 취재에 동행한 교통안전공단 지윤석 박사는 “한국에서도 최근 V2V 시스템을 상용화하기 위한 조사작업에 착수했지만 대규모 실험 단계까지 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앤아버의 사례는 시민들의 안전 의식과 지자체의 지원이 합작된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앤아버=곽도영 기자 now@donga.com
#V2V#대화하는 車#무선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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