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로 흐르는 사법부, 도덕적 일탈행위 줄잇는 검찰, 제 역할 못하는 국정원-감사원
신뢰 잃고 흔들리는 사정기관… 국가 기강-사회 질서도 흔들려
‘명량’이나 교황에 위로 받기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도 엄중하고 절박하다
신뢰가 항상 문제이다.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사가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을 선정한 결과 보도를 보면, 공무원에 대하여는 일반 국민의 2.6%와 전문가의 5%, 법조인에 대하여는 일반 국민의 1.9%와 전문가의 9%만이 이들을 신뢰한다고 응답하였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개혁이 시급한 대상으로서도 정치인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공무원이 2위, 법조인은 4위에 속한다는 보도도 함께 있었다.
공무원과 법조인 중에서도 국가 기강과 사회질서 유지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기구로는 무엇보다 헌법기관인 사법부와 감사원, 그리고 검찰과 국가정보원 및 경찰을 들 수가 있다. 알다시피 이들 기관은 법령이 정한 재판과 공직 감찰, 범죄 소추와 수사, 국가안보 관련 정보 등을 관장하므로 흔히 사정기관이라고도 불리며, 많은 국민은 이들을 아직도 권력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른바 사법 관료주의적 경향과 함께 뇌물죄 등 형사사건의 양형문제로 자주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고, 감사원은 최근 규제개혁 추진 공무원에 대한 감사면제조항 구상에 대하여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였던 사례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기관 고유의 권능에 형식적으로 집착하는 성향을 보여 왔다.
또 검찰은 권력 지향적이라는 해묵은 비판 외에 최근 몇몇 간부의 도덕적 일탈행위로 인하여 국민의 신뢰가 유례없이 낮은 수준에 놓여 있다. 국가정보원 또한 지난 정부의 일부 전문성이 떨어지는 책임자로 인하여 국익에 부합하는 품질 높은 정보 수집·생산기관으로서의 국내외적 신뢰성에 흠이 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경찰도 유병언 사건 등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검찰의 수사지휘권과 관련하여 때로는 미진하고 때로는 과도한 수사역량을 노출함으로써 국민의 온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안전문제를 비롯한 정부행정 전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떨어지고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있는 이때야말로 이들 사정기관의 바른 역할 찾기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한 임무 수행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이들 사정기관은 헌법정신의 바탕 위에서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본래의 역할에 좀 더 진력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국가정보원의 원훈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 개인의 소견으로는 국가최고정보기관이 학술연구기관도 아닌 이상 ‘진리’보다는 ‘국익’ 또는 국민을 위한 헌신이 더욱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사원도 공군이 제주행 수송기에 군의 사기 또는 복지 차원에서 가족들을 태워주는 오랜 관행을 지적하기보다, 해운업체에 대한 감독관청의 유착 요인과 그 폐습을 진작 감사, 시정하게 하였다면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이들 기관은 법령에 따른 소임을 다할 뿐 서로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검찰과 경찰 사이에 이른바 수사권 지휘 논쟁이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상의 경쟁의식은 감사원과 검찰, 검찰과 국가정보원 사이에도 종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불필요한 경쟁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기관 고유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의 신망을 잃게 하는 첩경임을 기관의 책임자들은 언제나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사정기관의 책임자들이 시대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항상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시대정신을 고민하면서 기관을 이끌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정부의 권위뿐만 아니라 나라의 격 자체가 떨어졌다고 낙담하는 국민이 너무도 많다. 영화 ‘명량’이나 교황의 방한 열기에서 위로를 받고 그치기에는 현실이 실로 엄중, 각박하다. 권력을 가진 사정기관이라도 바로 서야 그나마 나라의 격이 지켜질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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