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鐵馬·Iron Horse)’라고 불린 야구 선수가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17시즌 동안 활약하며 타율 0.340에 493홈런, 1995타점, 장타력 0.632를 기록했다. 14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통산 장타력은 역대 3위, 타점은 5위, 타율은 16위, 홈런은 27위다. 성적도 대단하지만 그가 철마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1925년부터 14년 동안 2130경기를 쉬지 않고 출전해서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도, 심한 근육통에 시달려도, 손가락이 부러져도 그는 경기장에 나왔다. 이 기록은 1995년까지 56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스타이면서도 겸손하고 소박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1939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전년도에도 전 경기에 출전했던 그였기에 팬들은 깜짝 놀랐다. 1939년 4월 30일을 끝으로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던 그는 그해 7월 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은퇴식에 힘겨운 걸음으로 등장했다. 뉴욕시장을 비롯한 인사들과 6만 명의 팬들 앞에 선 그는 “여러분은 제가 겪은 어려움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했다. 그리고 2년 후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누구보다 강했던 철마를 멈추게 한 것은 바로 ‘근위축성 측색경화증(ALS)’.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힘을 잃는 질환, 바로 ‘루게릭병’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지난 요즘 그의 이름이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 열풍 때문이다.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이벤트이니 냉풍(冷風)이라고 해야 될까.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미국 ALS협회가 시작한 캠페인이다.
국내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연예인 정치인 등을 시작으로 참가자가 무섭게 불어나고 있다. 스포츠 분야도 그렇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일찌감치 얼음물을 뒤집어썼고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 프로야구 삼성 류중일 감독 등 지도자들도 동참했다.
빠르게 확산되는 이 캠페인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선정적인 복장에 물을 끼얹은 여자 연예인에 대해서는 ‘참여를 빙자한 홍보’라는 비난이 거세다. ‘인맥 자랑’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고, 한 사회의 기부금은 한도가 있는데 특정 분야에 몰리면 피해를 받는 다른 분야가 생긴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누가 어떤 마음으로 참여했든 이 캠페인을 통해 루게릭병의 실상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행이다.
지인에게 물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해서도, 루게릭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루 게릭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운동선수 아니냐”는 대답 외엔 더 알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결번(4번) 주인공. 뛰어난 실력에 성실함까지 갖췄던 스타. 병마(病馬)가 돼서도 사랑을 받았던 철마. 그는 하늘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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