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겐 다양한 특권이 있다. 국민의 기본적 의무인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에서도 특권이 있다. 국회의원은 향토예비군 동원과 훈련에서 제외되고, 민방위 훈련도 제외될 수 있다고 향토예비군법과 민방위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납세의 의무에선 일반 국민보다 건강보험료를 적게 낸다. 정치자금 동원책으로 지적되는 출판기념회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정 활동에서도 본회의나 상임위 출석 의무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급여와 수당을 포함한 1억3000여만 원의 세비가 국회의원 300명에게 지급된다.
기본적으로 국회의원이 지켜야 할 의무 등을 명시한 국회법이나 관련 법안 자체를 입법권자인 의원들이 스스로 손질하지 않는다면 특권은 폐지될 수 없는 구조다. 선거 때만 되면 ‘특권 내려놓기’를 외치지만, 말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정치권의 ‘쇄신 움직임’을 쇄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 ‘특권 폐지’ 법안은 생색내기용?
동아일보와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가 공동으로 19대 국회 개회 이후 이달 8일까지 제출된 ‘특권 내려놓기’ 관련 법안 30건을 유형별로 살펴본 결과 △겸직 금지 6건 △세비 관련 5건 △의원 연금 관련 4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권한 강화 4건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 금지 3건 등이었다.
겸직 금지와 관련한 국회법 개정안은 대부분 국회의원이 영리 업무에 종사하는 직종에 겸직할 수 없도록 하고 겸직 신고와 심사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비슷비슷한 내용이 겹쳐 국회 운영위원장이 통합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국회 운영위원회는 올 4월 ‘국회의원 겸직 및 영리업무 종사 금지에 관한 규칙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법 29조 ‘공익 목적의 명예직’에 대해 “공익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또는 단체의 비상근·무보수직”이라는 유권해석을 담은 것이 주된 내용이다. 겸직 금지 예외를 대폭 늘려 다시 원위치 시킨 것이란 비판이 많다. ‘국회의원의 철도·선박·항공기 무료 사용’ 조항을 삭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 정도가 ‘특권 내려놓기’ 실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반영해 의정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의원에게 수당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회의원수당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은 2년 넘게 운영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의원의 배우자나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2012년 7월 발의는 됐지만 본회의에는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 여야 혁신안도 실천은 없다?
국회의원 특권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 초 여야는 경쟁적으로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말뿐이다.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국민과 약속한 불필요한 기득권 내려놓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의원들의 해외출장에 대한 윤리성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달 뒤인 2월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도 도입, 출판기념회 수입의 선거관리위원회 신고 등 정치혁신안을 발표했다. 국회의원이 받을 수 있는 선물과 축의금, 부의금 한도를 5만 원 이하로 제한하겠다고도 했다. 이 중 입법을 통해 현실화된 건 하나도 없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 척결’이 탄력을 받으면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 입법 논의가 구체화됐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쟁으로 아직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으는 편법을 개선하겠다는 공언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수입과 지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안은 2월 발의된 뒤 운영위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돼도 출판기념회 수입과 지출을 허위로 신고하면 확인할 장치가 없다는 것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바른사회 이옥남 정치실장은 “특권 내려놓기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해 당론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공직자로서 본분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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