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18> 북한 바둑 프로그램 ‘은별’ 몇 단인지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6일 14시 51분


프로기사 김찬우 6단은 요즘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느라 바쁘다. 직원들과 한 컷.
프로기사 김찬우 6단은 요즘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느라 바쁘다. 직원들과 한 컷.
프로기사 김찬우 6단(42)은 바둑계에서는 드문 정보기술(IT) 전문가다. 특히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에 밝은 편이다. 인터넷 대국에 쓰이는 집수계산, 형세판단 프로그램이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다.

그는 10년 전 북한과 접촉해 바둑대국 프로그램인 '은별'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기도 했다. 북한과 바둑대국 프로그램도 개발하려 했으나 얼어붙은 남북관계 때문에 모두 중단된 상태다. 최근 열린 서울세계수학자대회에서는 쟁쟁한 수학자들을 상대로 강연도 했다. 2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공장지대의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요즘 모바일 게임 개발을 끝내고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게임이름은 '삼국지 무한쟁투'. 삼국지를 스토리로 깔고 장수들을 기용해 싸우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나오고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여포 등 장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비릭스'라는 회사와 공동 개발했다. 추석 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직원 등 6명과 함께 버그를 잡아내느라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김 6단이 바둑과 다소 멀어 보이는 게임을 개발하게 된 것은 지난해 봄부터. 원래 2011년 겨울 한 인터넷 업체와 기력진단 서비스 프로그램을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그게 어그러지면서 개발인력을 게임개발로 돌린 것. 그에게 게임 쪽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생소한 분야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갤러그 테트리스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고수였던 데다 프로가 된 뒤에는 AI에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 출시하는 게임이 어느 정도 성공하면 본업인 바둑보급 프로그램에 몰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계수학자 대회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했나. AI 분야인가.

"본래는 인공지능 바둑대국프로그램에 대해 강의하려 했으나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급수체계의 문제점으로 주제를 바꿨다. 현재 기력측정 시스템은 하향식인데 상향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강의 줄거리다. 예컨대 현재 시스템은 프로와 4점 정도 깔고 둘만하면 아마 4단으로 인증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금세 흥미를 잃어 바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둑에도 게임의 요소를 도입하자는 것이 내 주장이다. 예컨대 게임처럼 레벨1에서 레벨2로, 다시 레벨3으로 올라가는 상향식으로 기력측정시스템을 만들면 배우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바둑 문제를 푸는 시간과 행마의 능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능력 등을 수치화하면 수십 단계의 레벨로 차별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우리도 기력측정 방법이 다양해져야 한다. 중국 바둑 포털의 경우 기능은 우리보다 떨어지지만 입문자들끼리 서로 바둑을 둘 수 있어 우리보다 바둑의 접근성이 높다."

김 6단은 현재의 바둑 위기를 내부가 아니라 외부환경에서 찾았다. 지금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게임 등이 쏟아지면서 바둑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 코닥필름이 전 세계를 제패하다 몰락한 것은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지금은 젊은이들이 찾지 않고 있는 바둑에 하루빨리 게임적 요소, 즉 재미를 더해야 살아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바둑대국 프로그램 개발에도 여전히 관심이 많다. 현재 바둑대국 프로그램 중 가장 센 것은 일본의 '젠' 프로그램이다. 올해 3월 일본에서 열린 제2회 전성전(電聖戰)에서 우승한 소프트웨어다. 2위는 프랑스의 '크레이지 스톤'. 일본에서 한국 킬러로 유명했던 프로기사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은 젠과 크레이지 스톤에 각각 4점을 깔아주고 접바둑을 둬 젠에는 이겼으나 크레이지 스톤에는 졌다. 프로와 4점 정도면 아마 5단 수준.

북한 바둑프로그램 은별도 2010년에는 일본의 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소프트웨어다. 김 6단은 2006년 은별을 수입해와 국내에 판매했다. 이를 위해 평양을 방문해 조선컴퓨터센터와 접촉했고, 개성공단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는 북한 측과 은별 외에 새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데 의기투합했으나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며 지지부진해졌다. 은별 역시 국내에서 하루 10개 이상씩 팔릴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업그레이드가 되질 않아 개점 휴업상태. 현재 일본에서 판매되는 은별은 젠과 2점 이내의 치수라는 게 그의 설명. 그는 "남북관계가 좋으면 대국 프로그램이 상당히 진척됐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이 머지않아 프로 기사를 이길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컴퓨터가 체스챔피언을 이겼지만 바둑과는 다르다는 것. 그는 "장기와 체스는 기물이 줄어드는 게임이지만 바둑은 기존의 돌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인데다 몬테카를로법을 바탕으로 한 바둑대국 소프트웨어가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운 것은 중 3때. 어깨너머로 배워 7, 8급 정도를 뒀을 때다. 그는 당시 서울 광진구 중곡동으로 이사했는데 하굣길에 방앗간 옆 정자에서 바둑을 두는 일이 많았다. 토요일에는 점심도 거르고 밤늦게까지 바둑을 두기도 했다. 그해 겨울 한 달정도 한국기원 바둑강좌를 들었고, 고 1이 되던 2월부터 권갑용 바둑도장을 다녔다. 당시 박성수 사범(현 프로 4단)에게 8점을 깔고 뒀다. 2, 3급수준. 그러다 그해 말 KBS바둑축제 고등부에서 준우승을 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프로에 2점을 놓으면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 됐다. 권갑용 사범으로부터 "류시훈 말고는 가장 빨리 늘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는 바둑에 몰두하기 위해 대원고 2학년 때 자퇴한 뒤 1년간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지냈다. 그리고 고 3때 입단 문턱까지 갔었다. 입단대회에서 안관욱 이관철 김기현 그리고 김찬우가 7승 2패 4자 동률로 재대국을 했으나 3위에 머무는 바람에 안관욱과 이관철만 입단했다.

그 뒤부터 그에게 입단의 문은 10년이나 열리지 않았다. 고생이 많았다. 권갑용 도장에서 사범으로 바둑을 가르쳤다. 양천대일 바둑도장에서도 사범으로 지냈다. 당시 제자였던 이세돌 최철한은 이미 프로가 됐다.

그러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97년 아마국수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1998년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것. 그는 20회 세계아마대회에서 한국 아마추어로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아마추어 선배들이 '국위를 선양한 만큼 프로로 입단시켜야 한다'며 서명 운동을 펼친 덕에 그는 1999년 특별 입단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때는 1위 실력이었지만 프로의 세계는 녹록지 않았다. 1년 동안 술도 먹지 않고 바둑공부만 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눈을 돌린 것이 바둑 보급 쪽, 특히 성인 보급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까지 바둑을 가르치는 것은 주로 어린이들 대상이었으나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야 승산이 있다"고 본 것. 당시 네오스톤이라는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에서 성인들에게 한 판에 1만 원 정도를 받고 실전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복기를 아주 꼼꼼히 해줘 유명 강사가 됐다. 강의료는 1만 원에서 5배로 올랐다. 1000판 정도의 강의 자료를 남겼다. 지금은 네오스톤이 합병되는 바람에 그 자료가 사라졌다.

바둑을 가르치다 보니 강의에도 체계가 잡혔다.

"바둑의 수라는 것은 결국 영역을 확장하거나 영역을 견제하거나, 자신을 보강하거나, 공격하는 네 가지 중 하나다. 하지만 어떤 한 수를 둘 때 공격만이 아니라 보강도 한다면 더 좋다. 그게 바로 실력이다. 그러기에 한 수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활공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6단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바둑 보급이다. 그는 "한국 바둑이 잘되려면 새로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어떤 과정을 공부하면 바둑을 즐길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며 "그리 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누구나 쉽게 배우고 접근할 수 있는 바둑게임 앱을 개발할 생각도 있다. 재미있게 바둑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보통은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게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놀이식으로 바둑을 가르쳤다. 현재 타이젬 7단(아마추어 5단 정도)의 실력.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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