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 강의실’에 로스쿨 지원생들이 몰린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8일 13시 56분


서강대의 인기강의 중 하나인 최진석 교수의 ‘철학산책’
서강대의 인기강의 중 하나인 최진석 교수의 ‘철학산책’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더해 칸트, 데카르트가 서양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철학자라는 것, 공자 맹자 노자 장자의 사상이 동양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대학에 들어가면 누구나 듣게 돼 있는 '철학개론' 덕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철학에 대한 인식은 거기까지다.

기자를 포함해 대부분은 철학이 삶에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어려운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한다. 한국에는 지금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지만 이것 역시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한때의 바람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철학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요즘 마음이 더 무겁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면서 철학을 외면하면 뭔가 유행에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대학에서 철학과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철학과를 나오면 취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강대의 경우는 다르다. 철학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도 높고 재미도 있다.

철학과 사무실에서 밝게 웃는 최진석 교수와 학부 및 대학원생들. 서강대 철학과의 특징은 다양한 철학을 공부한 내노라하는 교수들이 포진돼 있고 교육 또한 철학의 본질에 다가서는 방법을 취한다는 점이다.
철학과 사무실에서 밝게 웃는 최진석 교수와 학부 및 대학원생들. 서강대 철학과의 특징은 다양한 철학을 공부한 내노라하는 교수들이 포진돼 있고 교육 또한 철학의 본질에 다가서는 방법을 취한다는 점이다.

1학기 서강대 국제인문학부 철학과가 개설한 철학전공 과목 중에서 논리학 개론을 들은 학생은 타 전공 수강자가 철학전공 학생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철학전공 학생은 38명이었는데 비전공 학생은 138명이나 됐다. 뿐만 아니다. 14개 철학전공 과목 중 플라톤철학, 선진·한철학사 등도 비전공학생이 철학전공 학생보다 더 많이 수강했다. 그 어렵다는 미학개론 수강생도 비전공 학생이 23명(전공 30명)이나 됐다.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고 외면 받으며 구조조정 1순위에 꼽히는 철학과목이 왜 서강대에서는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서강대만의 현상인가, 아니면 '철학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신호인가.

철학과 학과장인 최진석 교수는 유독 논리학에 학생들이 몰린 것은 로스쿨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철학은 언어와 논리를 다루는 학문이기에 로스쿨 입학할 때도 도움이 되고 입학해서도 법을 배우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몰렸고 특히 LEET(법학적성시험)에 논술 과목이 들어있는 것이 타 전공 학생이 철학과의 논리학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것.

논리학이 아닌 다른 철학 전공과목에 타 전공 학생들이 몰린 것은 '철학적 관심' 때문이라고 최 교수는 말한다. "현대의 특징은 자기주도성이다. 박제된 지식과 경험으로는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학생들이 느끼기 시작했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만의 정체성 확립 여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미학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무엇을 만드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 만든 것의 아름다움을 따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집단이 주도권을 갖는 시대는 정형화된 틀을 요구하지만 개별이 주도권을 가질 때는 나의 삶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삶에 관심을 두게 된다."

강영안 교수는 제대로 된 철학교육만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영안 교수는 제대로 된 철학교육만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철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서강대의 독특한 다전공 제도와 철학과의 변화도 영향을 줬다. 서강대는 3학년 이상부터 다전공이 가능한데 철학과 139명 중 106명이 다전공을 하고 있고, 그중 15명은 3개를 전공하고 있다. 2013학년도 기준으로 철학과 학생의 89%가 다전공 중이며 최근 5년 평균 82% 이상이 다전공을 이수했다.

철학과 학생들은 주로 경영, 경제, 신문방송, 심리 등을 다전공하고 있는데 취업도 고려하면서 철학을 바탕 삼아 관심 있는 다른 학문을 심층적으로 공부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경영학을 복수전공 중인 철학과 4학년 정혜린 씨의 말. "철학은 따지고 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데 어떤 기획이 아이디어만 늘어놓은 것인지, 아니면 확실한 논리에 근거한 것인지를 판별하는데 철학적 훈련이 도움이 된다." 정 씨는 또 "철학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물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덧붙인다. 다전공 제도는 수능 성적기준 최고수준의 학생이 입학하는 국제인문학부에서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철학전공 재적생은 2014년 현재 200명에 달한다. 이는 40명의 학과 정원 때보다 오히려 많은 숫자다.

철학과의 변화는 서강대 학풍을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한 교수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강영안 교수는 학생들이 철학에 대해 호의를 갖게 된 이유를 "2005, 2006년을 기점으로 철학과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원어로 철학을 공부한 실력 있는 교수들이 대거 임용됐는데 이들의 합류로 서양철학 동양철학 종교철학 미학 등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커버할 수 있게 됐다.

책으로 꽉찬 강영안 교수의 연구실. 기자가 본 교수 연구실 중에 가장 책이 많았다. 강 교수는 제대로 된 철학교육만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으로 꽉찬 강영안 교수의 연구실. 기자가 본 교수 연구실 중에 가장 책이 많았다. 강 교수는 제대로 된 철학교육만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서강대가 예수회 전통의 형이상학적 실재를 추구하면서도 가톨릭 철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철학적 다양성을 허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수들이 공부한 지역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철학을 제대로 전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교수들이 철학하는 방법과 그 필요성을 설명했지 철학 지식을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강 교수는 "칸트 데카르트 공자 노자 등 유명 철학자의 말을 다른 사람이 해석한 책으로 철학적 지식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든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까지 질문하고 답할 수 있도록 철학적 훈련기회를 제공하는 게 올바른 철학교육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철학을 학생들에게 '통조림'이 아닌 '생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언어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도 철학과의 특징이다. 최 교수는 노장철학 강의 시간에 중국말로 텍스트를 읽고 강 교수 또한 일년에 한 번 정도 철학원서를 텍스트로 삼는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과의 미래비전이 "철학을 이해, 연구, 공부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철학적 시선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절어있는'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아직 여건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는 철학교육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투영되기 위해서는 철학교육도 교육이지만 '철학적 사유'가 통용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한데 우리사회가 아직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에 계속

이종승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대학세상#철학#서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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