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일본 도쿄 동북쪽을 흐르는 스미다(墨田) 구 아라(荒) 강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진상 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 이사인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54·사진) 씨가 발 아래쪽 둔치를 가리켰다. “저곳에서 일본 군인들이 조선인들을 기관총으로 학살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은 조선인은 일본도로 내리쳤고 숨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석유를 부어 태웠습니다.”
니시자키 씨는 지난해 간토 대학살 90주기를 맞아 학살 현장을 목격한 일본인의 증언을 모은 증언집 3권을 펴냈다. 올 5월에는 일본 학자와 시민들이 모여 결성한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일원으로 일본 시민 5360명의 서명을 담은 청원서를 중·참 양원 의장에게 제출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청원서를 제출할 때 도움을 준 일부 국회의원들은 가을 임시국회 때 정부에 왜 진상을 조사하지 않는지 따지는 질의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그는 “이미 2차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반응을 보일 때까지 해마다 봄에는 시민 서명을 국회에 제출하고 가을에는 의원들을 통해 정부에 질의서를 제출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성을 하지 않고 문제를 덮기에 급급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참극을 다시 부를 수 있다. 최근 헤이트 스피치에는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는 피켓이 등장한다. 간토 대학살을 연상시키는 문구다”라고 우려했다.
일본 교과서에서 잇따라 ‘학살’이라는 표현이 사라지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는 “우파들이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비판했다.
니시자키 씨는 2000년 아라 강 근처 사유지를 사들여 희생자 추도비를 세웠다. 당초 강 둔치에 세우려 했으나 구 의회가 “학살을 입증할 공적자료가 없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간토대지진 당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흥분한 민중과 군, 경찰에 학살당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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