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유네스코 대표부 대사를 만나 규슈·야마구치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실사를 맡는 전문가 집단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도 이를 알렸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기쇼 라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소장은 일본 정부의 규슈·야마구치 산업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과 관련해 “한국 입장에서 민감한 사항이라는 데 동의한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본은 2월 자국 내 8개 지역, 28개 산업시설을 ‘메이지 시대 일본 산업혁명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이 대거 끌려가 일한 곳이라는 점에서 등재를 반대하고 있다.
라오 소장은 일본의 등재 신청 자체를 기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등재 신청서를 살펴봤는데 일본 측 주장대로 메이지유신 관련 시설들이었고 강제징용 관련 내용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신청서에 적힌 내용만 확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그는 “ICOMOS가 자문 의견을 내면 이를 바탕으로 21개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관여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했다.
일본이 최근 가미가제 자살 부대원의 유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다가 비판 여론에 밀려 철회한 데 대해서도 “191개 유네스코 협약 당사국들이 무엇을 신청할 것인지는 그 나라의 주권적 권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학계 관계자는 “역사 혹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중재를 맡는 건 당연하다”며 “일본이 유네스코의 최대 재정 분담국인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12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해 라오 소장은 “ICOMOS의 본실사가 다음 달 중순쯤 이뤄질 것”이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존 노력과 관리 계획 등을 점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특정 국가 차원의 역사적 가치를 뛰어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이 최근 등재된 남한산성을 포함해 11개의 세계문화유산을 갖게 된 비결에 대해선 ‘높은 전문성’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우수한 문화유산 전문가,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 같다. 또 세계유산위원회 국가로 활동하면서 등재 절차를 꿰뚫고 있어 준비를 차근차근 잘한다”고 말했다.
라오 소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설립 60주년을 맞아 해외문화홍보원의 초청으로 최근 방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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