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가기에 주머니는 가볍고, 여유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럴 때, 부담 없이 떠나는 도심 속 산책은 어떤가?
PART1 시간이 멈춘 듯한 곳, ‘낙산공원길’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소박한 재미가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날 것 같은 오래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집성촌의 정겨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10분 정도 길을 오르다 보면 600년 된 성곽으로 둘러싸인 낙산공원을 만날 수 있다. ‘서울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낙산공원의 정상에 오르면, 서울시의 근사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산공원의 언덕길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산책로로 손꼽히는데, 해발 129m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곳에는 유난히도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많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고 가슴속에 담아둔 달달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된다. 서울 성곽은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가 쌓은 도성으로 약 18km에 이른다. 성벽 바로 아래로는 이화마을이 있다. 벽화마을로도 유명한 이곳은 오래된 주택이 많고 골목이 가파르고 좁아 낙후지역이었던 곳이다. 2006년부터 정부지원을 받아 예술가들이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리고 빈터에 조형물을 설치해 마을이 화사하고 밝은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이후 마을 구석구석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젊은층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이 됐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산2-10 문의 02-743-7985
PART2 숲과 나무 데크가 어우러진 ‘안산자락길’ 서대문구 안산자락길로 가려면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나와 서대문구 의회, 한성 과학고를 지나 오르막길을 10분가량 올라야한다. 오르는 길이 워낙 가파르고 아스팔트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안산자락길을 오를 때 편한 신발과 옷차림은 필수다. 아스팔트길이 끝나는 지점부터가 바로 안산자락길이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길목으로 연결된 나무데크다. 나무데크와 친환경 마사토길은 지난해 11월에 완공된 것으로 이 편평한 길은 걷는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안락함을 준다.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는 폭 2m의 나무 데크는 총 7km까지 이어져 편리함을 더했다.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나무 그늘 사이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걷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안산자락길은 꽤 높은 지점에 위치해 있어 서울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볼 수 있다. 나무데크만 걸어도 산책의 묘미를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지만, 등산에 자신이 있거나 끝까지 올라가 보고 싶다면 ‘봉수대’로 향하면 된다. 안산자락길 봉수대까지 오르려면 나무데크를 이탈해서 산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흙과 바위가 섞인 야생의 길을 오르다 보면 봉수대를 만날 수 있다. 봉수대는 시울시 기념물 제13호로 조선시대 연기와 횃불로 적의 침입이나 위기를 알렸다. 봉수대까지 오르면 ‘서울 최고의 전망’이라고 칭할만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PART3 도심 속 푸른 숲, ‘여의도공원’
증권가, 방송국,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 이로써 바로 유추해 낼 수 있는 여의도. 고층의 빌딩과 검정 양복을 입은 넥타이부대들이 거리를 누빈다. 여기까지가 여의도의 전부라고 이야기하면 무겁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진정한 여의도의 매력은 잘 조성된 공원에 있다. 여의도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직장인은 한 번쯤 점심때, 혹은 퇴근 후 여의도공원을 걸어봤을 것이다. 복잡한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연의 좋은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여의도 공원은 주말에는 가족들을 위한 쉼터가 된다. 돗자리, 그늘막텐트, 요기를 할 수 있는 음식만 있으면(아니 빈 몸뚱이라도 상관없다) 편안하게 하루를 즐길 수 있다. 마치 푸른 잔디밭에 누워 자유를 즐기는 파리지앵이 된 것처럼. 가족단위의 나들이객이 주를 이루고,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여의공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느긋하게 산책을 즐겨도 좋고 공원안의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다. 더불어 근처 한강공원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해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푸른 잔디밭과 나무, 곳곳에 심어진 예쁜 꽃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무쇠심장이 아니라면, 여의도공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 문의 02-761-4079 PART4 서쪽 동네를 아시나요? ‘서촌마을’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모여 있는 서쪽 동네 서촌. 서촌은 효자동, 누하동, 옥인동, 청운동 등을 통틀어 이야기하며, 특별히 구역을 나누거나 동마다 특징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통인동을 걷다 보면 어느새 효자동으로 들어서고, 효자동 주민센터 골목을 지나면 옥인파출소가 나온다. 예전만해도 경복궁 동쪽의 삼청동과 가회동을 포함한 북촌이 인기를 끌었다. 한국과 서양의 미가 잘 혼합돼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북촌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이들이 서촌으로 몰리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과 갤러리, 골목골목을 걷는 소소한 재미와 따뜻함이 사람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효자동 건너편에 위치한 통인시장도 산책하면서 꼭 거쳐야 할 곳이다. 한 TV프로그램에 통인시장이 소개되면서 지금은 주말이면 발 디딜 곳 없이 북적이는 인기 명소가 됐다. 입구에서 현금으로 엽전을 바꾸면 엽전으로 시장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배식판에 자신이 원하는 반찬을 엽전과 바꿔 담아 먹는 것도 서촌을 즐기는 묘미 중의 하나. 통인시장을 지나면 인왕산 아래 조용한 한옥마을인 옥인동을 만날 수 있다. 집과 집 사이의 경계가 없고, 골목길에 예스러운 느낌이 많이 묻어난다. 시기에 맞게 서촌예술시장을 열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든다. 옥인동길을 오르다 보면 겸재 정선의 인왕산도를 재현한 수성동계곡을 만날 수 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PART5 조선 왕릉으로 산책, ‘선정릉’ 서울에서 가장 번잡한 강남에 도시의 삭막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다. 조선의 아홉 번째 왕이었던 성종과 성종의 둘째 아들 중종의 묘가 있는 선정릉. 왕릉 주변으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심어져 있어 푸른 숲을 형성한다. 선정릉을 산책할 때는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숙연하고 고요하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오는 것도 좋지만 혼자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심적으로 복잡한 일이 생겼을 때,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풀의 향기를 맡으며 생각을 정리한다면 마음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선릉 주변의 산책로는 푸른 잔디밭과 트인 공간이 많아 휴식을 즐기려는 가족과 연인들이 많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온 직장인도 적잖다. 매표소를 지나면 선릉(성종의 능)으로 안내하는 홍살문과 제향을 올리는 정자각이 세워져 있다. 선종이 잠든 능 주변을 걷다보면 강남의 고층 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시간이다. 성종대왕릉에서 정현왕후릉으로 향하는 길은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이다. 마치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상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삼릉공원에서 가장 걷기 좋은 산책코스다. 이곳을 벗어나면 산책을 할 수 있는 오솔길이 나온다. 청설모와 이름 모를 새들을 만날 수 있고, 숲과 흙냄새로 도심 속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35-4 문의 02-568-1291 PART6 달팽이처럼 느리게, ‘정동길’ 누구나 한 번쯤은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예전에 이곳에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와 관계없이 많은 연인이 이 길을 걷는다. 언제 찾아도 변하지 않는 멋스러움과 사계절 내내 그에 맞는 운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돌담길을 걸으면 그 안에 스며든 수많은 사연이 궁금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걸었을까.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울었을까. 그래서인지 이 길을 걸으면 최대한 속도를 늦추고 싶다. 천천히 걸으며 100년의 역사가 서린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정동길은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일방통행로다. 조금 떨어진 곳에 공영주차장이 있기는 하지만, 주차할 곳을 쉽게 찾지 못해 몇 번이고 맴돌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이유로 차를 두고 오는 것이 정동길을 느긋하게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극장을 지나 영화관이 자리한 경향신문사로 가는 길을 추천한다. 정동 언덕 정상으로 올라가면 고종이 왕궁을 떠나 몸을 피한 러시아공사관이 자리한다. 이른바 아관파천의 아픈 역사가 깃든 곳이다. 정동극장 옆 골목에는 덕수궁 증명전이 있는데, 을사조약이 체결된 곳으로 역사의 치욕을 담고 있다. 또한, 고종 때 선교사가 지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자리해 100년이 훌쩍 넘는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주소 서울 중구 정동 기사·사진제공 : 엠미디어(M미디어 www.egihu.com ) 김효정 기자(kss@egihu.com), 권오경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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