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의 일생을 회고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그녀의 삶과 일, 그리고 사랑까지. 이번 전시는 샤넬에게 영감을 준 장소들을 통해 이끌어 낸 창조적 언어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8월 30일부터 오는 10월 5일까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문화 샤넬전-장소의 정신 CULTURE CHANEL-THE SENSE OF PLACES>이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문화 샤넬전 큐레이터였던 장 루이 프로망이 기획했다. 2007년 모스크바 푸쉬킨 미술관과 베이징 국립 예술 미술관, 그리고 2013년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파리 팔레 드 도쿄에 이어 이번에는 서울에서 진행된다. 총 10개에 이르는 전시 공간은 샤넬의 인생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를 대변하며, 각각의 장소가 샤넬의 패션 작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바진, 도빌, 파리, 베니스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정을 통해 샤넬은 여러 가지 이미지와 추억들로 영감을 끌어내고 상상력을 키웠다. 이번 전시는 샤넬의 패션, 주얼리, 시계, 향수 등의 창작품과 500점 이상의 사진, 책, 오브제, 원고, 기록, 예술 작품을 통해 샤넬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섹션1. 유년기의 인상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8월 19일 소뮈르에서 태어났다. 19세기 말, 경제 활동 구조가 농업 중심이던 프랑스가 산업혁명의 여파로 사회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가난한 농민들은 자연스레 도시나 신흥 산업 지역으로 터전을 옮겼다. 샤넬의 부모도 그 무렵 시장을 이곳저곳 떠돌며 속옷과 작업복을 파는 행상인 생활을 했다. 농촌 출신 부모의 감성을 이어받은 샤넬은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에 애착이 깊었다. 내리쬐는 태양을 맞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즐긴 샤넬의 작품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밀 이삭은 그녀의 뿌리를 말해 주는 대표적인 모티브이다. 샤넬은 평생 엄격하고 실용적인 농민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
섹션2. 오바진의 규율 샤넬의 어머니는 그녀가 열두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샤넬을 포함한 세 자매를 수녀원이 딸린 고아원에 맡겼다. 샤넬은 엄격한 수도생활과 버려진다는 것에 대한 가혹함을 느꼈고, 이는 훗날 그녀의 창작 세계의 밑거름이 됐다. 이곳에서 그녀가 얻게 된 것은 절제와 화려함이 뒤섞인 역설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수녀들의 옷이나 샤넬이 입었던 고아원복에서 그녀는 하얀 칼라에 검은 미니드레스의 디자인을 떠올렸고, 이는 절제된 순수성을 담고 있었다. 이와 함께 샤넬은 수도원 생활을 통해 눈여겨본 해, 달, 별 같은 문양들을 자신만의 상징으로 삼았다.
섹션3. 다름이 주는 자유 스무살이 된 샤넬은 자유로운 파리 생활을 꿈꾸며, 가난하게 생활해 나가는 자신의 모습에 싫증을 느낀다. 그녀는 물랭의 한 의상실에서 일하며 밤에는 뮤직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당시 무대에서 ‘코코리코’와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라는 노래를 해 ‘코코’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물랭에는 기병 부대가 주둔해 있었고, 그녀는 당시 여성들과 다른 외모로 기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훗날 그녀의 투피스 디자인은 기병들이 입은 제복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녀는 결국, 목소리가 좋지 않아 가수의 꿈은 접지만, 물랭에서 만난 기병 부대의 젊은 장교 에티엔 발장의 경제적 후원으로 자유를 쟁취하겠다는 꿈을 잃지 않는다.
섹션4. 성에서의 삶 에티엔 발장의 대저택에서 생활하게 된 샤넬은 독서를 즐기고, 말을 타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남자 옷장에서 자신이 필요한 옷을 자유롭게 빌려 입었는데, 긴 치마 형태의 여자용 승마복 대신 남자들이 입는 재킷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었다. 경마장에서 그녀가 입은 단순한 옷과 작고 둥글납작한 모자는, 귀부인들의 화려한 ‘벨 에포크’ 풍 드레스, 과한 장식이 달린 모자와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하지만 샤넬은 이런 삶에 싫증을 느끼고, 결국 일하기를 열망했다. 그러다가 에티엔 발장의 영국인 친구 아서 카펠(‘보이’로 불림)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훗날 보이는 그녀의 연인이자 평생의 후원자가 된다.
섹션5. 파리에서의 독립 1910년경, 샤넬은 처음으로 성공을 맛본다. 보이 카펠과 연인 사이가 되고, 그의 후원을 받아 파리에 모자 전문점을 열었다. 깃털이나 리본 하나로 단순하게 장식한 챙 넓은 모자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잡지에까지 소개된다. 1913년에는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도시 도빌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고, 모자뿐 아니라 저지 소재의 세일러 블라우스까지 선보인다. 이는 어부의 작업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모던함에 자유로운 활동성을 갖춘 샤넬만의 스타일은 당시 저명인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편, 삽화가 셈이 그린 ‘도빌의 폴로 경기장’에서는 보이 카펠에게 마음을 빼앗긴 샤넬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폴 모랑의 소설 <루이스와 이렌>의 모티브가 될 만큼 둘의 사랑은 애절했다.
섹션6. 베니스의 보물 그러나 행복은 심술궂은 나비처럼 그녀 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1919년 그의 연인 보이 카펠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20년 친구들의 설득에 그녀는 베니스로 여행을 가게 된다. 토르첼로 바실리카 성당의 빛바랜 금빛 모자이크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습은 어린 시절 오바진 수도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베니스를 상징하는 동물인 사자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산 마르코의 상징이었다. 사자자리에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은 이런 우연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나중에 사자는 샤넬의 세계에 자주 등장한다. 깡봉가 아파트를 장식하는 오브제들 중에서도 사자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샤넬은 그것을 창작의 요소로도 편입시켜, 투피스의 단추나 핸드백의 잠금쇠, 자신의 초상을 새긴 주얼리 등을 디자인할 때 활용했다.
섹션7. 러시안패러독스 1915년 샤넬은 보이 카펠과 함께 가게 된 비아리츠에 그녀의 첫 패션 하우스를 개점한다. 비아리츠는 러시아 귀족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왕조가 몰락하자 많은 러시아 귀족이 바스크 연안으로 망명했다. 그러던 중 샤넬은 비아리츠에서 러시아 황제 리콜라스 2세의 조카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을 다시 만나 1922년까지 연인관계로 지냈다. 그녀는 드미트리의 주선으로 궁정 전속 조향사 출신인 에르네스트 보를 만나 자신의 첫 향수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그렇게 1921년 ‘샤넬 N˚5’가 탄생한다. 한편, 드미트리와 만나면서 접했던 러시아 문화는 이후 샤넬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섹션8. 블루 트레인 샤넬은 1923년 몬테카를로에서 영국의 대부호 웨스트민스터 공작을 만난다. 샤넬은 그와 함께 지내면서 활동적인 여가 생활을 즐긴다. 공작의 요트를 타고 나가 낚시를 즐기는가 하면, 스코틀랜드 광야를 찾아 사냥했다. 한편, 그녀는 공작이 착용한 트위드 소재 외투 스타일에서 차용해 훗날 샤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트위드 재킷을 선보였다. 1928년에는 코트다쥐르에 위치한 로크브륀 해변 언덕에 ‘라 파우자’ 별장을 짓는다. 그녀는 일하다가 틈나는 대로 ‘블루 트레인’을 타고 그곳을 찾았고, 그곳에 여러 친구를 초대했다. 1922년 12월에 개통된 블루 트레인은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에서 파리를 거쳐 지중해 해안 코뜨 다쥐르까지 운행하는 호화 야간열차의 별칭이었다.
섹션9. 새로운 세계 1925년에 열린 파리 만국 박람회를 계기로 ‘아르 데코’ 양식이 번성하게 된다. 샤넬의 ‘미니멀리즘’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1921년 출시한 ‘샤넬 N˚5’의 심플한 향수병 디자인이나 1910년대 말에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가 대표적이다. 미국 보그지는 ‘샤넬표 포드’라고 소개하면서, 포드사의 인기 모델 ‘T’ 자동차에 비유하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리틀 블랙 드레스는 시크함의 대명사가 된다. 1930년 샤넬은 미국으로 가서 할리우드 영화 네 편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수십 년 뒤, 마릴린 먼로가 인터뷰에서 자신은 잘 때 샤넬 N˚5 향수만 걸치고 잔다고 고백하면서 앤디 워홀이 이 향수병을 작품의 소재로 쓰기도 했고, 재키 케네디가 샤넬 투피스 정장으로 ‘재키룩’을 완성하면서 샤넬과 새로운 세계, 미국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확인시켜 줬다.
섹션10. 샤넬정신 1918년, 샤넬은 파리 깡봉가 31번지에 있는 건물을 사서 그곳에 매장과 작업실, 서재, 패션쇼 공간을 만든다. 주로 흰색을 쓰면서 곳곳에 검은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벽면을 거울로 뒤덮었다. 아래 위층을 잇는 나선형 계단과 그 벽면을 따라 이어붙인 거울 덕분에 손님들은 새 의상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모델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샤넬은 계단 꼭대기에서 몰래 아래층 전체를 엿볼 수 있었다. 건물에 개인 생활공간을 만들었지만 잠은 다른 곳에서 잤다. 이 공간에는 그녀가 아끼는 오브제와 가구, 책,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이곳은 그녀의 미학적 행로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며, 코드와 상징으로 가득찬 그녀만의 온전한 세계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번 전시회는 샤넬의 삶의 행로를 되돌아보고 그녀가 어떤 꿈을 꿨는지 상상해 보며, 샤넬의 진정한 정신세계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전시개요 전시기간 2014년 08. 30(토) ~ 10. 5(일)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입장료 무료 문의 02-2153-000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