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골목길 60km 쌩쌩… 보행중 사망 절반 차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일 03시 00분


[서울 이면도로 시속 30km 제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입시전문회사 진학사 앞 골목길.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주택가 일방통행 도로를 5t 트럭 한 대가 한쪽 방향으로 붙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트럭이 ‘곡예 운전’을 하는 동안 보행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옆을 걸었다. 단일 차로인 이 도로에서 차량이 낼 수 있는 법정 최고 속도는 시속 60km다.

같은 시각 이곳에서 500m가량 떨어진 종로구 사직로 서울지방경찰청 앞 도로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왕복 4차로였지만 속도를 내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경찰관이 순찰하는 경찰청사 앞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이 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50km다. 규정만 따지면 왕복 4차로 도로보다 보행자가 지나가는 골목길에서 차량이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 골목길 최고속도, 절반 줄인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서울 지역의 이면도로 제한 속도를 시속 30km로 정한 것은 이 같은 문제에서 비롯됐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교통 표지판을 설치해 속도 제한을 둔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골목길 등 이면도로 속도를 시속 60km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 이면도로(편도 1차로 이하) 중 시속 30km의 속도 제한이 있는 구간은 374km에 불과하다. 대부분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전체 이면도로 6558km의 5.7% 수준이다. 서울 시내 골목길 대부분을 시속 60km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면도로에서 사망하는 보행자가 속출하고 있다. 2011∼2013년 보행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서울시민 1220명 중 619명(50.7%)이 이면도로에서 사망했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사고 충돌 시 차량 속도가 시속 30km일 때까지는 보행자 사망률이 크게 늘지 않지만 이를 넘어서면 사망률이 급격히 늘어난다”며 “사망사고가 잦은 이면도로의 제한 속도를 30km에 맞추는 것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시속 30km일 경우에는 사고가 났을 때 보행자 사망률이 10%를 밑돌지만 시속 50km가 넘어가면 사망률이 80% 이상이 된다.

얼핏 생각하면 이면도로마다 속도를 제한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이것 역시 쉽지 않다. 교통표지판 하나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 평균 35만 원이고 이를 설치간격 200m에 맞춰 모두 설치한다면 소요되는 비용만 108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면도로 속도를 30km로 정한 다음 교통 체증이 심하거나 사고가 없는 지역에 별도 표지판을 설치해 최고속도를 유동적으로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 이면도로 속도를 하향 조정하는 또 다른 당사자인 서울시는 경찰 방침에 긍정적이다. 서울시는 3일 열리는 ‘제한 속도 개선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앞두고 의견서를 보내 “제한속도를 낮추면 교통사고가 줄어든다는 것은 이미 국내외 연구를 통해 검증된 결과”라며 “적극적인 시민 홍보를 전제로 제한속도 하향에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기창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지도부장은 “시민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이면도로 제한속도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해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유럽 국가들도 이면도로는 시속 30km

경찰은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전국 모든 이면도로의 제한 속도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도로교통법에 나온 이면도로 최고속도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역별로 교통 혼잡과 도로 밀집도 등이 달라 속도 하향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서울의 이면도로 속도 제한 결과를 보고 다른 지역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재난연구단장은 “미국이나 영국 등은 도로를 지역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건물이나 주거지 밀집지역에 인접해 있는지 여부를 보고 분류한다”며 “인적이 드문 지방 이면도로에 시속 30km 속도 제한을 거는 것은 과도하다고 볼 수 있지만 지방이라도 도심 지역에서는 속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 초부터 도시나 농촌의 구분 없이 간선도로로 둘러싸인 이면도로 구역에서는 시속 30km로 속도 제한을 하고 있다.

박재명 jmpark@donga.com·강홍구 기자
#이면도로#골목길 최고속도#속도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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