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준비 덜된 천재 윤석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4일 03시 00분



2011년 12월 어느 날 윤석민(28·볼티모어·사진)과 류현진(27·LA 다저스)이 자존심을 건 골프 대결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던 두 투수의 샷 대결은 한국시리즈 7차전만큼 치열했다. 결과는 88타를 친 류현진의 승리. 윤석민은 1타 뒤진 89타를 쳤다. 류현진은 정식으로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90타를 깼다. 윤석민 역시 구력이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80대를 치고 있었다. 야구뿐 아니라 골프에서도 이들은 ‘천재’였다.

천재형 선수들은 노력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민과 류현진도 ‘노력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던 시절 윤석민은 가장 게으른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러고도 2011년 투수 4관왕(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에 올랐다. 윤석민은 “내가 봐도 죽어라 훈련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운동할 때만큼은 집중해서 철저하게 한다”고 했다. 류현진 역시 놀 때는 놀고, 할 때는 하는 선수다.

3년이 지난 요즘 둘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빅리그 2년째를 맞은 류현진이 벌써 14승을 거두며 수준급 선발투수로 자리 잡은 반면 올해 볼티모어와 계약한 윤석민은 한 번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난달 31일에는 40인 등록 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윤석민은 마이너리그 시즌을 마친 뒤 3일 귀국했다.

올 시즌 윤석민은 볼티모어 산하 트리플A 노퍽에서 23경기에 등판해 4승 8패, 평균자책점 5.74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윤석민은 볼티모어와의 계약이 늦어지면서 스프링캠프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개인 훈련을 했다곤 하지만 팀 훈련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창 좋을 때 150km를 쉽게 넘던 직구 구속이 140km대 중반대로 떨어졌다. 140km대 중반까지 나왔던 슬라이더는 130km대 후반으로 가라앉았다.

이에 반해 2012년 12월 일찌감치 다저스와 계약을 확정지은 류현진은 마음 편히 이듬해를 준비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를 마음에 품고 있던 그 전해부터 전에 없던 노력을 기울였다. 2012년 한화 사령탑이던 한대화 KIA 수석코치가 “현진이가 그렇게 러닝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을 정도.

윤석민의 미래는 스스로 하기에 달렸다. 에이전트인 보라스 코퍼레이션 관계자는 3일 통화에서 “윤석민은 3년간 개런티(보장) 계약을 했다. 메이저리그에 있든 마이너리그에 있든 2년간 잔여 연봉 415만 달러(약 42억 원)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돈이 아니라 명예의 문제다. 실력으로 자기 자리를 잡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석민이 내년 이후 선택할 수 있는 행보는 크게 세 가지다. 메이저리그에 안착하는 것, 마이너리그에 머물며 잔여 연봉을 받는 것, 그리고 잔여 연봉을 포기하고 FA 자격으로 한국을 포함한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한결같이 “윤석민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라고 말한다. 거꾸로 얘기하면 아직 그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보라스 관계자는 “힘든 마이너리그 생활을 통해 윤석민이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착실히 준비하면 내년엔 빅리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석민에게는 내년 2월 스프링캠프가 야구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승부처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윤석민#볼티모어#메이저리그#류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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