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이 굵던 3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50여 명이 비를 맞으며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한 케이블방송 설치와 보수·철거를 담당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해고를 당한 뒤 두 달 넘게 거리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청 쪽으로 가니 수십 개의 천막이 인도를 메우고 있었다. 추석맞이 특산물 장터라고 했다. 인도까지 들어서 걷기에 불편했다.
서울 잔디 광장의 혼잡은 더했다. 한쪽엔 천막 장터가, 다른 쪽엔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있었다. 분향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비 때문인가 직원에게 물었더니 “요즘은 발길이 뜸한 편”이라고 했다. 광장 한가운데 깃대에 묶여 젖어 엉켜 있는 노란 리본들이 눈에 거슬렸다.
시 청사 양옆은 1인 시위 팻말이 차지하고 있었다. 철거용역업체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민원과 조립가옥을 철거당하며 장애인의 점유권을 빼앗겼다는 민원, 두 건의 팻말이 입구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시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청사 뒤를 돌아 무교동 길로 접어드니 지방의 한 쇠구슬(공업용 강구) 제조업체 노조원들이 붙인 사측 비난 대형 플래카드가 길가에 걸려 있고, 바로 앞에는 시위대로 보이는 중년 남자 서너 명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청계천이 시작되는 청계광장으로 들어서니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라’는 정의당의 대형 플래카드가 보였다. 바로 옆 동아일보사 앞에는 ‘세월호법 반대’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는 보수단체 천막이 있었다.
이순신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릴레이 단식과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세찬 비가 들이치는 천막 안에 돗자리를 깔고 100여 명의 사람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사진과 플래카드, 벽보들을 살피며 세종대왕상을 향해 천천히 가로질러 가자 웬 남자가 “빨리 안 가고 뭐 합니까” 소리를 지른다. 그의 말과 표정에서 피로감과 적대감이 확 끼쳐왔다. 덜컥 겁이 나 유족들을 만나려는 계획은 접기로 했다.
광장 건너 교보빌딩 앞에는 경찰차들이 방벽처럼 길게 서 있었다. 대로 곳곳마다 의경들과 경찰차가 진을 치고 있은 지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두 달이 넘는다.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돼 별 생각 없이 살다가 새삼 광화문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근처 직장에 다니는 한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요즘 광화문은 ‘한국이 경찰국가 같다’는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이 각종 시위와 플래카드로 덮여 있는 모습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느낄까.”
하긴 워싱턴 파리 도쿄, 선진국 어느 수도를 가도 이런 혼잡과 긴장된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비가 내리던 3일에도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우산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광화문 곳곳을 찍고 있었다.
다시 회사로 들어오는 마음이 복잡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아프다’라는 새삼스러운 자각부터, 왜 우리는 갈등을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풀어야 하나, 정치와 국회는 뭘 하고 있나, 차라리 외국인들 눈에 띄지 않는 특정 지역을 따로 정해 불만을 표출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4일 오전 박원순 시장은 시정(市政) 4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도심 보행환경 개선과 외래 관광객 2000만 명 달성 등의 청사진을 내걸었다. 얼마 전에는 민선 6기 첫 해외출장으로 덴마크와 독일을 방문해 ‘문화 관광 협력’ 추진 협약도 맺었다. 하지만 수도 서울 한복판의 혼잡함을 정리하지 않고 도대체 어디에서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서울의 품격을 올리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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