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당권 욕심이 야당도 국회도 망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논거로 흔히 내세우는 것이 자력구제(自力救濟·self help)의 금지다. 자력구제는 사전적으로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사력(私力)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력구제는 정글사회에서나 통용되는 법칙이다. 작은 공동체만 만들어져도 자력구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형벌을 규정한 역사상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자력구제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도 법을 통한 간접 처벌이지 자력구제를 허용한 건 아니다. 기원전 1700년경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력구제가 허용된다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다. 국가라는 공동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법을 만들고 공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자력구제를 대행해 준다. 약자보다는 강자가 자력구제의 능력에서 앞선다. 결국 자력구제 금지는 약자 보호를 위한 것이다. 다만 공권력의 보호를 구할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정당방위 같은 자력구제가 허용된다.

헌법상 삼권분립의 측면에서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는 부당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차기환 변호사가 최근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의 토론회에서 제기한 의견이다. 범죄 관련 법률 제정은 국회에, 수사와 기소는 행정부에, 재판은 사법부에 각각 맡겨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정신이다. 그런데 ‘국회가 법으로 만드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거나 ‘국회가 사실상 임명하는’ 특별검사에게 수사와 기소를 맡기는 것은 재판을 제외한 2개 기능을 국회에 넘겨주게 되는 셈이라는 주장이다.

차 변호사는 의회 전횡의 실례로 프랑스대혁명(1789∼1794년) 때의 국민공회를 들었다. 반(反)혁명자 처벌을 위해 의회가 임명한 검사가 수사를 하고, 의회가 임명한 특별재판소 판사가 재판을 했다. 그 결과는 공포정치였다. 30만 명의 용의자가 체포됐고 1만5000명이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행한 독재였다.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 사람들은 국회를 볼모로 잡은 채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고 주장한다. 바꾸어 말하면 문명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는 자력구제를 허용하고, 법치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초인 삼권분립을 훼손하라는 것이다.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낳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10년간 국정을 운영해 본 적이 있는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국가 작동의 기본 원리를 망가뜨리자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놀랍다. 혹시 나중에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이는 비단 그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정치로 밥 먹고 사는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알고도 그런다면 다른 까닭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당권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본다. 이름깨나 있는 20여 명이 당권 경쟁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당권 경쟁에선 일반 국민이 아닌 골수 지지자들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문재인 의원이 동조 단식을 한 것도, 강경파 의원들이 장외투쟁을 고집하는 것도, 박영선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변화와 혁신을 말하다 다시 강성으로 돌아선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당권이 아무리 탐나더라도 국회, 나아가 국가를 망치는 길을 걷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그 길이 자신들의 정당마저 망가뜨려 대권 고지와는 점점 멀어지게 하는 자충수임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세월호#자력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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