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고급 호텔방에서 박모 씨(55)가 지폐 다발을 꺼냈다. 모인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본 '100만 달러' 지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텔 금고 안에는 장당 발행가 5000억 엔짜리 채권(약 4조8500억 원)도 52장 들어 있었다. 박 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 비자금을 관리해 온 비선 권력기관 총재"라며 "보관 중인 수십만 t의 금과 채권을 처리하는 비용만 주면 수십 배 이익을 주겠다"고 말했다.
위조한 지폐와 채권을 사용한 황당한 수법이었지만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 정부도 사칭했다. 박 씨 등 자칭 '비선 권력기관' 일당은 "미얀마 해외건설 사업권을 따 주겠다"며 피해자 유모 씨(37·무역업)와 함께 미얀마로 출국했다. 미얀마 정부관계자라는 현지인까지 나타나 사업권 논의를 진행했다.
박 씨의 꼬임에 넘어가 돈을 투자한 사람은 유 씨 등 모두 3명. 이들은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93차례 12억5000만 원을 건넸다가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7일 박 씨를 검거해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가 검거 이후에도 '어르신에게 말해 너희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