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대한민국의 세월호 죗값은 얼마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1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농성장 주변에 일부 야당의원과 진보성향 종교 문화 사회단체 명의의 동조단식 천막들이 줄줄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50일에 이르도록 멈춰선 대한민국의 시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국회는 5월 이후 130여 일간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경제와 민생회복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내고 있다. 철저히 원인을 규명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하자던 국민적 다짐도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갈등 속에 길을 잃었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하지만 5개월간 계속된 사실상 국상(國喪)에 “차라리 세월호 유가족이 부럽다”는 또 다른 유가족들도 있다.

해마다 군에서는 평균 120여 명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아들이 목숨을 잃는다. 각종 사고나 구타 가혹행위 등이 원인이다. 유가족이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 달라며 시신 유골 인수를 거부한 152구는 가족 품에 안기지 못한 채 군부대 봉안소나 냉동보관소에 임시 안치돼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46용사들도,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접근해오는 북한 함정에 발포하지 말라는 ‘정치적 명령’을 지키다 숨진 6명의 장병도 한 맺힌 억울함을 다 풀지 못하고 영면해 있다. 최근 부산 창원에서 폭우 속에 무리하게 운행한 버스와 함께 휩쓸려간 10명의 실종 사망자 가족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따지거나 청와대를 향해 고함 한번 질러보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산사태로 주민 2100명이 실종됐는데도 350여 구의 시신만 발견된 상태에서 수색작업을 포기하고 사고지역을 집단무덤으로 선포했다. 우리는 10명 남은 실종자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바닷속에서 건져내기 위해 10여 명의 또 다른 목숨을 희생한 후에도 “이제 그만 접자”고 감히 말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중히 여기는 나라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치와 이념이 끼어들면 사람의 목숨 값에도 차별이 생겨난다. 세월호 특별법을 반(反)정부 투쟁의 고리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송파 세 모녀 자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한 법안이나 선임병의 가혹행위로 숨진 윤 일병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군사법제도 개편쯤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폭식 투쟁’ 운운하며 단식농성 중인 유가족의 베인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우편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류도 비뚤어진 가치관으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상실한 진상들이다.

여와 야, 우와 좌를 떠나 세월호에 끼어든 정치와 이념, 상호 저주와 증오의 굿판을 거두고 현실적 해법을 모색할 때 세월호의 출구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먼저, 세월호 특별조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억지와 광기로 나라를 뒤흔들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부터 “필요하다면 나를 포함한 청와대 누구도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천명함으로써 수사권 기소권 없는 진상조사위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안 된다는 유족과 야당의 불신을 불식시켜 주면 어떨까.

야당과 진보좌파 단체들은 특별법에 초강력 울트라 칼날을 잔뜩 장착하면 보이지 않던 ‘원흉’까지 보이게 만들 듯이 행동하고 있다. 이는 결국 새누리당의 거부를 핑계로 어떠한 조사 결과에도 “거짓”이라고 공격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의구심만 강화시킬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자문(自問)해볼 때가 됐다. 대한민국이 치러야 할 세월호 참사의 죗값은 과연 얼마인가. 우리는 또 다른 세월호를 막기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합당한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고 있는가.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세월호#국회#특별법#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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