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북방 4개 섬과 역지사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이진 국제부장
이진 국제부장
일본 열도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 그곳에서 가장 동쪽에 네무로 반도가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반도 끝에 있는 노삿푸 곶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섬들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10여 개 섬으로 이뤄진 하보마이 군도다. 네무로 반도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노쓰케 반도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구나시리 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일본이 말하는 북방 4개 섬 중 두 곳이다. 나머지는 에토로후와 시코탄이다. 4개 섬은 캄차카 반도에서 이어지는 쿠릴 열도의 남쪽에 흩어져 있다. 이 섬들은 일본어 이름 말고 러시아어 명칭으로도 불린다. 4개 섬에 2개 언어로 이름이 붙은 것은 주인이 일본에서 러시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4개 섬을 통틀어 일본은 북방영토, 러시아는 남쿠릴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국은 일본이 ‘1억 옥쇄(玉碎)’를 벌일까 두려웠다. 미국은 옛 소련을 끌어들이려고 일본과 싸우면 쿠릴 열도 전부를 주겠다고 미끼를 던진다. 또 미국과 영국, 중국은 1945년 7월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그리고 우리(미·영·중 3개국)가 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한다’며 항복을 요구했다. 포츠담선언이다.

같은 해 8월 초 마침내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쿠릴 열도를 차례차례 점령해 내려와 4개 섬까지 손에 넣었다. 40년 전 러일전쟁 때 빼앗긴 사할린 남부 역시 되찾았다. 일본은 소련의 참전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무조건 항복하고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였다. 이듬해 소련은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를 자국에 병합시킨다. 전리품을 챙긴 것이다. 4개 섬에 살던 일본인 1만6000여 명은 눈물을 머금고 쫓겨나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4개 섬을 되찾기 위해 끈질기고도 지능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명문화된 쿠릴 열도의 범위에 시비를 걸었다. 4개 섬이 애초부터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억지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케다 하야토 총리는 1961년 의회에서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은 에토로후 구나시리 하보마이 시코탄은 당연히 일본 고유영토다”라고 밝힌다.

이 주장을 되풀이하자 일본 국민까지 사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일본이 자국 고유영토인 4개 섬을 반환하라고 요구한 것은 그 다음 정해진 수순이었다. 아소 다로 총리는 2009년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의 불법 점거가 계속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역으로 러시아는 일본 땅을 불법 점거한 ‘국제 불한당’으로 몰리고 말았다.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구나시리에 전격 상륙한 것은 강력한 항의의 표현이었다. 두 나라는 종전 69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2년 두 번째 취임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다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우의를 다졌다. 북방영토를 돌려받겠다는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이 북방영토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외무성에서 일할 때 최고의 러시아 전문가로 꼽혔던 도고 가즈히코 도쿄산업대 교수는 “북방영토가 일본으로서는 영토문제가 아닌 역사문제”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북방영토를 역사로 대하는 그 심정으로 한국의 처지를 돌아봤으면 한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1954년 이렇게 말했다. “독도는 일본 침략의 최초 희생자다. 일본 패전과 함께 다시금 우리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독도가 일개 돌섬이 아니다. 한민족 역사의 일부다.

이진 국제부장 leej@donga.com
#일본#하보마이#네무로#노쓰케#에토로후#시코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