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한 송년회 자리에서 첫아이를 낳고 아빠가 된 친구만큼 축하인사를 많이 받은 사람은 공유형 모기지에 ‘당첨’된 후배였다. 후배는 단 54분 만에 마감된 선착순 5000명 대상의 공유형 모기지 시범사업 신청에 성공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었다.
공유형 모기지는 연 1%대 저금리로 20년간 대출해주는 데다 집을 팔았을 때 생기는 차익이나 손실을 은행(국민주택기금)과 나눠 갖는 ‘신개념’ 상품으로 수요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집값이 떨어져도 돈을 빌려준 은행은 책임지지 않던 대출 관행을 깨고 새로운 금융 상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초반 인기도 잠시. 본사업이 시작되자 반짝 신청자가 몰렸다가 최근 몇 달째 대출 실적이 줄고 있다. 여전히 국민주택기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자금 대출로만 시행될 뿐 이 모델을 도입해 대출 상품을 내놓은 시중은행도 없다. “개념은 좋지만 연소득 제한에 2억 원의 대출 한도를 고려하면 공유형 모기지로 집을 살 사람이 많지 않다. 시중은행도 집값 하락의 위험 부담을 떠안으며 대출해줄 메리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9·1 부동산대책’에도 공유형 모기지와 같은 신개념 대출 상품이 담겼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시범 도입되는 ‘유한책임(비소구·非訴求)대출’이다. 지금까지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집값이 아무리 떨어져도 빌린 돈을 모두 갚아야 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집을 넘기는 것으로 대출 상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주택을 담보로 2억 원을 빌린 A 씨가 빚을 갚지 못했는데 집값이 1억5000만 원으로 떨어진 경우 지금은 은행이 경매나 재산 압류 등을 통해 대출금을 모두 회수해간다. 하지만 유한책임대출에서는 A 씨가 집을 넘겨주면 나머지 대출금 5000만 원은 갚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우선 저소득층 내집빈곤층(하우스푸어)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자금 대출인 디딤돌대출을 대상으로 부부 합산 연소득 4000만 원 이하 대출자로 한정해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중장기적으로 은행권 전반으로 유한책임대출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자산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큰 데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은행 관계자들은 “집값 하락으로 대출금을 떼일 위험을 줄이려면 은행이 대출 금리를 높이거나 대출 한도를 줄인 유한책임대출 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장 눈앞의 금리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먼저 외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고 중장기적으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떨어진 상황에서 상환 부담을 줄여주면 디폴트(채무불이행) 등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범사업을 앞둔 유한책임대출이 또 다른 공유형 모기지가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반쪽짜리 대책이 되지 않도록 세밀한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