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구법회]‘식품 이름’ 영어는 크게,한글은 작게 쓴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구법회 한글학회 평의원
구법회 한글학회 평의원
정부가 과자나 라면 등 식품 포장에 쓰는 제품명의 한자나 외국어를 한글보다 크게 표시할 수 있도록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영어나 일본어, 한자가 크게 적힌 라면, 과자 등이 나오게 된다는 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정한 식품의 표시 기준에 과자나 라면 등 식품의 이름을 포장지에 적을 때는 한자나 외국어 글자가 한글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식품위생법 제10조). 이것이 불필요한 규제이니 없애 달라는 산업계의 민원을 규제개혁위원회가 받아들여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즉, 세계화 추세에 맞춰 영문 이니셜이나 영문 제품명이 상용화되고 있는데 식품 산업에서 외국어 표기 제한은 타 산업에 비해 영업, 마케팅 활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국가경쟁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활자 크기 제한은 경쟁력을 낮춘다고도 주장한다.

외국어 표기 제한이 마케팅 활동에 제한을 받으며 수출 경쟁력을 낮춰 영업 활동에 지장을 준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식품은 품질과 맛으로 경쟁하는 것이지, 외국어 글자 크기를 더 크게 한다고 해서 수출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국인 소비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이는 영어나 외국 문자를 크게 적고 한글은 깨알같이 작게 써서 외국 제품처럼 보이게 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외제를 좋아하는 우리 소비 심리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그렇다. 오히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식품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쉽게 알고 찾을 수 있도록 제품명을 표기해야 한다. 먹거리 이름까지 영어로 크게 써서 소비자를 현혹한다면 오인으로 인한 사고도 발생할 수 있다. 사탕이나 과자류는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가 고를 수도 있는데, 크게 쓴 영어만 보고선 제대로 고르기 어렵다. 또 어린 아이들에게 한글보다는 영어나 외국어 글자가 우수하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세계화 열풍에 한글이 홀대받고 있는 이때에 내수용 식품 이름까지 외국어로 크게 포장한다는 건, 세계로 뻗어가는 한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식품위생법 제10조 규정에 따른 ‘식품 등의 표시기준’ 개정 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옳다.

구법회 한글학회 평의원
#식품 포장#제품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