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옷 입고 회사에 출근하면 뭐라고들 해요?” 직장 생활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다. 딱히 노출이 있거나 문신처럼 저항적인 외양으로 출근하는 건 아니었다. 옷이든 구두든 ‘약간 독특한’ 것들을 찾아 입고 신다 보니 드라마 속 직장 여성의 차림과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여 시접을 밖으로 드러내 옷의 ‘구조’를 보여주는 식이다. 지하철을 타면 귀에 대고 “옷을 뒤집어 입으신 거 같아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여성들도 있었다.
요즘은 이런 질문을 받는 일이 확 줄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그러려니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직장인들이 엄청나게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패션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옷을 통해 자신의 감성과 재능,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넥타이 맨 ‘회사원’들이 책상을 지키는 사무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차림도 많다. 가슴 라인을 드러내거나 실종될 듯 짧은 반바지, 꽃무늬의 점프 슈트(작업복처럼 아래위가 붙은 바지), ‘속옷 여기 있음’을 강조하는 블라우스나 레이스 바지 등등. 최근 한 호텔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파자마 차림의 여성이 입장하는 걸 보고 투숙객이 실수로 들어온 줄 알았는데 파자마 패션을 대담하게 시도한 업계의 직원이었다. ‘그녀의 연출력이 부족했거나, 내 이해력이 떨어졌거나’일 것이다.
옷이 이처럼 그것을 입은 사람과 세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오늘날 복식학자들은 “옷이 몸과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소리 없는 언어”(최현숙 동덕여대 의상학과 교수)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옷은 의미 없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사고가 지배하던 근대 초에는 ‘소리 없는 언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남성에겐 무채색 양복을 강요했고, 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여성이 ‘여성성’이나 ‘패션성’을 드러내는 일을 금지했다. 트임이 있는 스커트나 소녀 같은 분홍색은 금기였다. 그래서 공직과 정계, 기업에 여성들이 처음 진출할 무렵, 여성들은 펑퍼짐한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이건 어쨌든 서양 얘기고, 한복을 입다가 서양 옷을 ‘갑자기’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은 뭘 입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1979년 교복 입은 여학생들 앞에서 교복자율화를 선언하는 김옥길 교육부 장관의 한복 차림이다. 1952년 이후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된 그는 출근할 때마다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또 ‘무려’ 장관인 ‘롤모델’을 보며 여학생들은 이제 교복 대신 한복을 입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진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외국의 여성 정치인들이나 여성 기업인들이 앞장서 ‘첨단의 섹시 패션을 선보인다더라’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렇다면 옷이 경쟁력’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해석도 나왔다. 논리와 과정이 어떻든 내겐 반가운 변화였다. 여성 장관이 보라색으로 ‘깔맞춤’을 하고, 정치인들이 ‘베스트드레서’상을 받고, 한껏 멋을 내고 화보를 찍는 것 역시 ‘소통’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지금처럼 답답하고 우울한 시대에 패션 운운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생각한다. 왕년의 멋쟁이 정치인들은 금욕의 코스프레 중이고 불과 1년 전에 대통령의 보라색 옷이 희망을 의미한다고, 패션은 고품격 외교라고 흥분했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지금 누가 뭘 입는다고 달라질까 싶지만, 나는 그때가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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