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아경기 D-2]땅끝 마을 시골검객 “2관왕 찌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7일 03시 00분


펜싱 남자에페 에이스 박경두
6녀1남 집안의 귀한 막내아들… 中2때 누나들 반대 뚫고 검 잡아
그동안 亞경기 개인전은 노메달… 2014년 세계선수권 銀으로 상승세

펜싱 에페 국가대표 박경두가 태릉선수촌에서 펜싱 칼을 들어 보였다. 에페는 전신 찌르기로 승부를 겨루는 종목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펜싱 에페 국가대표 박경두가 태릉선수촌에서 펜싱 칼을 들어 보였다. 에페는 전신 찌르기로 승부를 겨루는 종목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요즘 나라에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다 보니 저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돼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무조건 받기만 했는데 이제는 ‘사회에 무언가 베풀어야 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동을 주는 일밖에 없겠구나’라는 책임감이 지금은 앞섭니다.”

인천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남자 펜싱 에페 국가대표 박경두(30·해남군청)는 펜싱 선수들 사이에서 달변으로 유명하다. 말을 걸지 않으면 눈만 큰 무뚝뚝한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인상을 풍기지만 말문이 터지면 세련된 말솜씨를 보인다. 아시아경기를 앞둔 각오를 물으니 역시 의미심장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박경두는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관왕을 노린다. 2011년 이탈리아 카타니아 세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던 박경두는 올해 7월 열린 러시아 카잔 세계펜싱선수권대회에서 한국 펜싱 사상 처음으로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상대 스타일에 맞춘 수비 전략과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과감했던 선제공격 작전이 주효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선전으로 인천 아시아경기 금메달 전망이 밝지만 박경두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인천 아시아경기를 앞두고서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심리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무래도 홈에서 열리는 대회고, 상대보다는 나 자신에게 부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감함보다는 평정심 유지가 우선입니다.”

인천 아시아경기는 박경두 펜싱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남 해남 ‘땅끝’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박경두는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학교 펜싱부가 훈련하던 체육관에서 펜싱 검과 마스크를 보고 곧장 펜싱과 인연을 맺었다. 1남 6녀 중 귀한 막내아들이 하루 종일 펜싱 검으로 방벽을 찌르자 여섯 누나는 남동생을 뜯어 말렸다. 하지만 박경두는 지금 17년째 펜싱을 하고 있다.

“어머니가 ‘아들 하나 있는데 운동을 시키면 건강하기라도 하겠다’면서 누나들의 반대를 한 방에 정리해주셨죠. 하하.”

박경두는 자기만의 펜싱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2012년 런던 올림픽 1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남자 에페 개인전에 함께 출전하는 라이벌이자 선배인 정진선(30·화성시청)의 펜싱 인생이 그제야 대단해 보였다. 나이는 같지만 생일이 빠른 정진선을 그는 형이라고 부른다.

“절실함이 없었어요. (정진선) 형은 펜싱을 하면서 수없는 꾸지람과 질타를 이겨내면서 성장해왔잖아요. 저는 어떤 대회든 절실함을 느끼지 못했고, 내가 왜 이겨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이번 대회에 임하는 박경두의 마음가짐은 펜싱 입문 ‘1년차’나 다름없이 새롭다. 박경두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반성과 노력이 부족했다. 저의 펜싱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요즘이다”라는 말로 인천 아시아경기에 나서는 출사표를 대신했다. 펜싱을 시작한 뒤로는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여섯 누나도 박경두를 자극(?)하는 존재다. “누나들이 이제 경기를 제대로 못하면 ‘똑바로 정신을 차리라’고 거침없이 말해줘요. 고개를 숙여야겠습니다.”

절실함으로 새롭게 태어난 박경두는 20일 남자 에페에서 본인의 아시아경기 개인전 첫 금메달에 도전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인천 아시아경기#박경두#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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