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23일(현지 시간)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으로 세계 정상들이 모였다. 유엔총회를 계기로 치열한 외교전이 시작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3, 24일 이틀간 유엔본부에서 10개 일정을 소화하며 ‘뉴욕 다자외교 무대’에 공식 데뷔한다. 여기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 평화통일 정책과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등에 대한 각국의 지지를 끌어낼 예정이다. 박 대통령이 22일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북한에 대화 요구한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이날 저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비공식 만찬을 가졌다. 반 총장이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을 환영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남북한이 만나 현안들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자신의 통일구상으로 △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한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한 협력 통로 확대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다만 북한이 흡수통일 방안이라며 반발하는 ‘드레스덴 구상’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다.
반 총장은 “작은 부분부터 차근차근 협력을 이루어 나가며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화답해 인도적 지원을 고리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생각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반 총장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위험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에 한국 정부도 적극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문제가 보건 문제에서 정치 안보 문제로 변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협력을 당부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지난해 5, 8, 9월에 이어 네 번째다. 올해 3월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별도로 만날 계획이었지만 박 대통령이 몸살을 앓으면서 일정이 취소됐다.
○ 미국 주재 ‘인권회의’에 민감한 북한
23일 오전 뉴욕 맨해튼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북한 인권 고위급 대화’는 미국 정부가 주최한 북한 인권 행사로는 최고위급인 장관급 회의였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직접 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미국이 직접 나섰다. 그 이유는 한국계 케네스 배 씨를 비롯해 매슈 토드 밀러,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 씨 등 미국인 3명이 북한에 억류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 개발을 통해 평화의 기초인 인권을 증진시키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심각한 모순”이라고 최근 북한의 행보를 비판했다. 케리 장관도 “북한에서는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고문과 낙태 등 반인권적 행태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인 탈북자 신동혁 씨도 “북한의 독재자가 국민에게 이런 고통을 줄 권리는 없다”며 “고통받는 우리 북한 형제들을 구해줄 수 있는 건 여러분”이라고 호소했다.
북한은 5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제시한 권고안 중 정치범수용소 폐쇄,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방북 허용, 성분제 철폐 등 83개 권고사항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달 19일 인권이사회가 268개 권고를 담은 ‘보편적 정례검토’ 보고서를 채택했을 때도 북한은 거부했다.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제안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던 북한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다. 한미 양국은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이후 권고사항조차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측의 참석을 반대했다. 미국이 “(회의에) 참석해 COI의 권고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힐 것이냐”고 하자 북측은 참석 요청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고위급회의는 결의문 등 별도의 결과물을 내는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제69차 유엔 총회에서 COI의 최종보고서를 반영한 결의안을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날 회의 결과는 북한 인권 논의를 활성화하는 촉매가 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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