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당시 26세였던 이종익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창문도 없는 지하방에서 살았다. 그는 23세 이른 나이에 ‘떡 장사’를 배우겠다며 경기 하남시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강동구의 한 떡집을 거쳐 강남구에서 두 번째 ‘수련’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변변한 화장실조차 없는 숙소는 ‘방’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 씨는 볼일이 급할 때면 무작정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일하던 가게로 뛰었다. 탁한 실내 공기 탓에 비염에 시달렸고 이유 없이 코피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씨의 머릿속엔 온통 ‘떡 장사’뿐이었다.
“강남에서는 뭐가 됐든 최신 유행인 제품이 나오고, 다른 곳에 비해 앞선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곳에서 까다로운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남들과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씨는 4년간의 수련 생활을 끝낸 2005년 말 하남으로 돌아왔다. 현재 그는 49.5m²(15평) 남짓한 점포에서 4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씨는 올해 동아일보와 채널A, 중소기업청, 경기도가 공동 주최하는 ‘청년상인 성공이야기 만들기’ 사업의 ‘성공 청년상인’에 뽑히기도 했다. 다음 달엔 경기도로부터 ‘성공 청년상인 인증 현판’을 받는다. ○ 일반 상가에선 매출 안 올라 마음고생
하남으로 돌아온 그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이 씨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곳은 하남 신장시장(경기 하남시 신장1로)에서 약 150m 떨어진 일반 상가. 그곳에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장사를 했지만 ‘눈물 쏙 빠지게’ 고생했다.
든든한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살 만한 집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잣돈이 모자랐다. 마땅한 거처가 없어 아내와 함께 가게에서 살아야 했다. 이 씨는 “이른 나이에 결혼한 아내가 고생하고 있는데 매출은 오르지 않아 혼자 눈물을 훔친 적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떡을 등에 지고 산을 타기도 했고, 아파트를 돌며 홍보전단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손님은 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7년 신장시장에 들어온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 시장 내 점포는 이 씨가 원래 장사를 했던 상가와 임대비용이 같았다. 하지만 입지 조건이 훨씬 나았다. 매일같이 시장을 찾는 단골 고객들이 있어 따로 판촉 활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 처음 나온 제품에 반응 폭발적
“떡을 파는 상인들은 보통 20, 30년 동안 한곳에서 장사만 하신 분들이에요. 젊고 경험도 적은 제가 이분들과 경쟁하려면 뭔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씨는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젊은 상인만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디어’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떡’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했고, 내로라하는 떡 장인들의 온라인 모임에도 가입했다.
“어느 날인가 서울에서 잘나가는 떡집 사장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하트 백설기’라는 걸 들었어요. 보통 백설기는 하얀색으로만 돼 있는데, 그 위에 색깔이 들어간 하트 모양 무늬를 얹는 거였죠.”
그는 1년 뒤 제품을 시판했다. 당시 하남에서는 처음 나온 제품이었다. 하트 백설기는 젊은 고객들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이후 하트 백설기를 응용해 ‘1주년 축하’ ‘100일 축하’ ‘돌 축하’ 같은 무늬가 새겨진 백설기와 떡 케이크를 내놓았고 이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 “돈도 좋지만 변화해야 살아남죠”
이 씨의 사업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요즘도 틈만 나면 하나라도 더 바꾸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을 이용한 자체 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첨단 단말기 사용에 익숙한 젊은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씨는 “‘젊은 사람이 장사를 하니 뭔가 다르다’란 인상을 남긴 게 주효했다”며 흡족해했다.
그는 전통시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호를 ‘○○떡집’처럼 평범하게 짓지 않고 ‘시루본’으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통일되고 정갈한 느낌을 주기 위해 가게 직원들에게 모두 ‘SIRUBON’이라는 글자와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맞춰 줬다. 기자와 만난 26일 그가 입은 검은색 앞치마에도 같은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이 씨는 7년 동안 매장 구성을 3번이나 바꿨다. 월세를 내는 매장이기 때문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자를 해야죠. 돈이란 건 원래 쓰는 만큼 버는 법 아닌가요?” ▼ 하남 신장시장 떡집들… 선의의 경쟁 불붙어 ▼
인테리어 개선-小포장 도입 확산 청년 사장 이종익 씨가 전통시장에 자리를 잡으며 바꾼 것은 그의 인생만이 아니다. 그가 경기 하남시 신장시장에 들어온 뒤로 시장 떡집들 사이엔 선의의 경쟁이 벌어졌다. 이제는 모두가 서서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총 120개 점포가 들어선 신장시장에는 원래 7곳의 떡집이 있었다. 2007년 이 씨가 가게를 차리면서 떡집은 8곳이 됐다. 원래 입점해 있던 떡집들은 보통 전통시장 떡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떡을 평범하게 만들어 파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 씨가 들어온 뒤 시장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시장 내 다른 떡집들은 깔끔한 인테리어에다 신제품까지 쏟아내는 이 씨의 가게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가게가 하나둘씩 늘었고 손글씨로 가격표를 예쁘게 단장해 붙이는 가게도 생겼다. 이제는 거의 모든 떡집이 이 씨처럼 소(小)포장을 도입했다.
처음부터 주변 상인들의 시선이 고운 것은 아니었다. 한 시장에 동일 업종 가게가 또 들어서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씨의 가게가 불러온 선의의 경쟁은 모두가 ‘윈윈’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와 상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정은수 신장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종익이가 들어온 뒤로 이곳 신장시장 떡집들이 신장1로 인근 떡 시장의 약 80%를 장악했다”며 “서로 배우면서 함께 크고 있다”고 말했다.
최문규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수석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청년 사장들이 전통시장에 들어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증거”라며 “전통시장의 콘텐츠 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진 모범사례”라고 설명했다.
신장시장은 최근 시설 현대화 사업을 마무리했으며 다양한 서비스도 도입해 상권 활성화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길이 130m에 이르던 천막을 들어내고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사업과 간판 디자인 통일 작업을 마치고 이달 16일 준공식을 열었다. 26일 찾은 시장은 깔끔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장 관계자는 “7월부터 시장 자체적으로 무료 배송 서비스도 도입했다”며 “편의성이 높아져 시장을 찾는 손님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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