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은 차기 중형잠수함 사업(3000t급 장보고함 2차 사업)을 내년부터 시작한다고 지난달 24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방사청이 지난달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사업 관련 예산이 잡혀 있지 않은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말로만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것인지….
차기 중형잠수함 관련 예산안이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방사청이 예산 신청에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 절차상 합동참모본부에서 새로운 무기의 도입을 결정하면 방사청에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선행연구를 거친 뒤 예산을 검토하는 사업타당성 조사를 한다. 하지만 이번엔 일의 순서가 거꾸로 됐다. 방사청은 지난달 사업 발표부터 해놓고 이달 들어 사업타당성 조사를 시작했다. 시간을 다투는 무기의 도입이라면 예외적으로 통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합참은 9년 전인 2005년에 이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군 당국은 선행연구를 지난해 7월에야 시작해 올해 7월 마무리했다. 이런 늑장 태도는 무기 도입이 급하다고 요청할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방사청과 해군은 11월에 예산 증액을 받겠다는 목표로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설득에 뒤늦게 매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대 초반 전력화를 목표로 3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야 할 이 사업은 북한의 잠수함 전력과 독도와 이어도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대응전력을 갖추는 사업이다. 북한은 이미 우리 군보다 7배 많은 잠수함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잠수함에 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가 나오는 상황이어서 군 당국의 대응은 너무나 안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회가 일을 안 한다고 탓할 게 아니라 군의 대비태세부터 점검해 볼 일이다. 잇따른 군내 인명 사고로 국민의 불신을 자초한 군이다. 외부의 적에 대한 위협 불감증까지 걸린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해도 너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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