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6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을 향해 두 가지 요구사항을 명확히 했다. 4일 있었던 ‘북한 황병서 3인방’의 깜짝 방문이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건강에 대한 답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년 넘게 한반도 문제를 담당해 온 베테랑답게 러셀 차관보는 북한의 ‘매력공세(charm campaign)’를 냉정하고 담담한 어조로 분석했다. “솔직히 내가 더 중시하는 것은 (김정은의 건강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건강과 복지”라는 그의 대답 속에는 북한을 보는 미국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화 공세를 펴는 것은 좋지만 스스로 할 일을 하는 것이 먼저라는 뜻도 분명히 했다.
러셀 차관보는 “북한 인구 2200만 명 가운데 700만 명 이상이 기아와 가난, 공포정치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끔찍한 비극”이라며 “배고픈 아이들과 교육을 위한 자원이 군대를 배불리고 장교들이 사치생활을 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이날 인터뷰는 45분간 진행됐다.
○ 북한 핵·경제 병진, 인권 정면 비판
―북한이 최고위급 인사를 동시에 파견한 의도가 궁금하다.
“고립된 북한으로서는 다른 나라의 지지와 협력을 끌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한 손으로 경제지원을 이끌어 내고 동시에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거대한 궤변(fallacy)이다. 이 세상에 병진노선을 지지해 줄 나라는 없다.”
북한은 2013년 3월 말 핵 무력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다는 병진노선을 당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했다.
―북-미관계 개선의 여지는 있나.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고 고립을 끝내도록 도와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와 스스로 약속한 비핵화 공약을 이행할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북한의 악행에 대해 국제사회가 부과한 제재와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북한이 반드시 지켜야 할 첫걸음이다. 그런 의무사항을 이행하고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해야 한다.”
―같은 말(馬)을 두 번 사고도 북한에 배신당한 경험도 있는데….
“안보와 경제발전을 핵으로 얻을 수는 없다. 오로지 진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핵문제에 대해 협상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대화를 위한 대화(talking)’와 협상(negotiation)은 다르다고 강조해왔다. 북한이 진지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 THAAD의 필요성 에둘러 강조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의 한국 배치에 대해서는 “담당 업무가 아니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대답의 행간에는 THAAD의 필요성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THAAD는 대단히 민감한 이슈가 되고 있다.
“미사일이든 핵무기든 강력한 억제력을 확보하고 시의적절한 방위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한국)이 안전하면 우리(미국)도 안전하다는 차원이다.”
러셀 차관보는 “미국은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같은 위협 수단으로 미국과 우방국들을 겁주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위협 수단이) 미사일이든 핵무기이든 강한 억제력은 강력하고 시의적절한 방위력과 동맹 사이의 통합력(unity)으로 확보된다”고도 했다.
동맹끼리 억제력을 갖는 데 필요한 무기라면 사주는 게 옳다는 취지다. 그는 이 억제력은 “북한이 진지하게 협상으로 나오게 만드는 채널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은 미사일방어(MD) 체계의 일환으로 THAAD를 한국에 배치하고 싶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의 잇단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이 THAAD 배치를 깊숙이 논의했다는 점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한일 관계, 장기적 국익을 생각하라”
러셀 차관보는 5일 데이비드 시어 미국 국방부 아태 차관보와 함께 방한했다. 두 사람은 일본으로 건너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문제를 논의한다. 이번 방한의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도 가이드라인을 사전 설명하는 것이다. 미일은 8일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반영한 가이드라인 개정 중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방한의 주요 목적이 가이드라인 개정에 대한 사전 설명일 텐데….
“미일 가이드라인을 마지막 개정한 게 1997년이다. 그사이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사정과 글로벌 상황이 크게 변했다. 일본도 변화했다. 우리는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이런 변화상을 건설적이고 능숙하게 반영하려는 것이다.”
그는 가이드라인 개정을 ‘현대화(modernize)’라고 표현했다. 한미 간에는 지난 60년간 동맹을 지속적으로 현대화해 왔고 미-호주 동맹도 그랬지만 미일 관계에서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러셀 차관보는 “우리는 일본에 자국 방위와 지역 안정, 인도적 지원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 개선이 더디다.
“한일 모두에 각자 장기적인 최적의 국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말하고 싶다. 한일이 협력하지 않으면 한국도, 일본도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일본이 과거사의 참혹함을 인정하고 이에 상응한 조치로 주변국의 신뢰를 다시 얻기 바란다.”
그의 방한 목적에는 이슬람국가(IS) 격퇴와 에볼라 바이러스 대처 등 글로벌 이슈에 한국의 협조를 구하려는 목적도 크다. 앞서 존 케리 국무장관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 협력을 당부했다.
▼ 대니얼 러셀 차관보는…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날인 2009년 1월 21일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 보좌관에 임명됐다. 이후 5년 6개월 동안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처럼 굵직한 안보
현안에서 한미동맹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1992년부터 3년간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과장으로 근무해 한국과 북한에 대한 이해가
깊다. 주오사카 미국 부총영사, 국무부 일본과장을 역임해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부인도 일본계다. 2013년
7월부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맡고 있다. 미국 세라로런스대와 영국 런던대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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