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촌지가 도착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7일 03시 00분


상품권서 고가 가방까지… 메신저 이용 ‘은밀한 선물’
선물함 삭제하면 흔적도 안남아… 당사자들 입 닫으면 적발 어려워
“일방선물 그냥 두면 받은걸로 착각… 거절하기 기능 추가되었으면”

초등학생 아이를 둔 대기업 워킹맘 이모 씨(41)는 9월 초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와 같은 학급의 학부모 10명이 올해 5월 스승의 날에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에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담임교사를 초대해 10만 원짜리 모바일 백화점상품권 10개 등 총 100만 원 어치를 동시에 발송했다는 거였다. 채팅방은 선물만 전달한 뒤 삭제해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 씨는 “모바일 메신저 덕분에 촌지 주기 더 편한 세상이 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모바일메신저 선물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디지털 촌지’로 활용되고 있다. 직접 만나거나 아이를 통해 전달할 필요가 없어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은밀하게 성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카카오톡, 마이피플, 라인 등 모바일메신저의 ‘선물하기’ 코너에는 다양한 품목이 판매되고 있다. 모바일메신저 상품거래 시장 규모는 약 4000억 원. 이 가운데 94%를 점유하고 있는 카카오톡에서는 모바일 백화점상품권을 비롯해 외식상품권, 10만 원 전후의 고가 화장품, 수십만 원짜리 가방 등이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TV, 스피커, 김치냉장고 등도 모바일메신저를 통해 선물할 수 있다.

인천지역 학부모 박모 씨(37·여)는 “카톡으로 선물하면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학부모들이 한다. 고가 상품은 아니지만 저렴한 커피 교환권 등을 보내본 학부모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고받은 흔적도 거의 남지 않는다. 선물 구매자와 수령자는 카카오톡 내 ‘선물함’에서 거래한 선물 내용을 확인할 수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이를 삭제하면 거래 내용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카카오톡 고객센터 측은 “선물하기 거래기록은 카카오톡 대화내용 저장과 동일하게 취급된다”며 “당사자들이 거래기록을 삭제하면 서버에 일정 기간 저장된 후 사라진다”고 밝혔다. 카카오톡 대화내용 저장 기간은 이달 중으로 5∼7일에서 2, 3일로 더 줄어든다.

신용카드, 휴대전화, 온라인 송금 등으로 결제한 모바일메신저 구매기록은 ‘인터넷상거래’ ‘인터넷쇼핑’으로만 표기된다. 인천시교육청 감사팀 관계자는 “모바일메신저로 선물을 주고받은 본인들이 신고하지 않으면 적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 교사 안모 씨(54·여)는 “교사들이 학부모들과의 모바일메신저를 아예 끊는 게 ‘모바일 촌지’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들은 ‘선물 거절하기’ 기능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방적으로 보낸 선물을 받을 수는 없고, 아무 반응도 안 보이면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이모 씨(49)는 “거절하기 기능이 있다면 대가성이 있는 모바일 선물에 대해선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현재 시스템으로도 선물 수령을 원하지 않으면 받지 않을 수 있어 거절하기 기능을 추가할 방침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 바코드 형태로 제공되는 모바일상품권의 경우 선물 받은 사람이 일정 기간(60∼90일) 사용하지 않으면 구매금액의 90%가 구매자에게 환불되며 택배로 배송되는 실물 상품은 주소를 제공하지 않으면 자동 환불된다. 모바일메신저 업계 관계자는 “매출을 떨어뜨릴 수 있는 기능이라 추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카톡#촌지#상품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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