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t씩 7년간 쌀과 씨름… ‘쌀도사’ 다 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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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8>부천 역곡북부시장 쌀집 사장 최윤석씨

“잡곡은 페트병에 포장” 청년상인 최윤석 씨(30)가 8일 경기 부천시 역곡북부시장 안 자신의 점포에서 페트병에 포장된 잡곡과 쌀 포대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학창 시절 씨름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20kg짜리 쌀 포대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부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잡곡은 페트병에 포장” 청년상인 최윤석 씨(30)가 8일 경기 부천시 역곡북부시장 안 자신의 점포에서 페트병에 포장된 잡곡과 쌀 포대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학창 시절 씨름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20kg짜리 쌀 포대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부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햅쌀이 나오는 9월부터 11월까지가 대목인데 어떻게 쉬겠어요? 요즘은 한 달에 하루 쉬는 것도 아까워요.”

청년상인 최윤석 씨(30)는 요즘 쉴 새가 없다. 어김없이 오전 9시면 경기 부천시 원미구 부일로 역곡북부시장으로 출근해 오후 9시까지 밥 먹는 시간을 빼고 꼬박 10시간을 일한다. 최 씨는 양곡을 도·소매하는 ‘강화·청원 농협쌀’ 점포의 사장이다. 그가 형 문석 씨(33)와 함께 운영하는 쌀집의 하루 매출은 150만 원. 하루 마진이 40만∼50만 원 정도이니 한 달이면 점포 임차료를 빼고도 1000만 원 이상이 남는다. 그러니 하루를 쉬는 것도 아깝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최 씨의 가게는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의 가게를 찾은 고객들은 상당수가 단골이 됐다.

8일 만난 한 고객은 “쌀이라는 게 맛이 없으면 다시는 안 사먹기 마련인데, 이 집 쌀로 지은 밥은 꿀맛이라 쉽게 바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 무거운 쌀 포대 나르다 몸살도

처음부터 최 씨가 쌀집 사장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경북 안동 토박이로 자라 그곳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가세가 기울어 더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2006년 봄 군대에서 제대한 최 씨는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결혼한 누나의 집에 한동안 얹혀살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그해 여름 매형이 일하던 인천의 한 양곡 도매상에서 월급 130만 원짜리 일자리를 구했다. 월급은 적은데 옮겨야 하는 쌀 포대는 너무 많았다. 무게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수없이 쌀 포대를 들어 올리다 몸살이 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배달부터 시작해 수금, 매장 관리까지 모두 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하루에 많게는 10t이 넘는 쌀을 배달해야 했어요. 보통 포장된 쌀 포대 하나가 20kg이니까 500포대를 날라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웬만한 사람들은 일을 하다가 골병이 들 수밖에요. 제가 인천 도매상에서 2006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거의 7년을 일했는데, 그동안 바뀐 직원이 200명이 넘더군요.”

다행히 최 씨는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초·중학생 때 씨름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고등학교 때는 보디빌딩부에서 힘을 키웠다. 하지만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있었다. 병상에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주에서 직장을 다니던 형도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돼 더는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최 씨는 7년 동안 쌀 포대와 씨름해서 모은 7000만 원에 형이 보탠 5000만 원으로 지난해 9월 부천 역곡북부시장에 쌀집을 열었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는 그의 곳간을 풍족하게 했다. 형제는 개업 준비를 하면서 안동에 계신 어머니를 모셔왔고, 이후 세 식구가 살 집도 마련했다.

○ “가격경쟁력 보다 고객믿음 더 중요”

지난해 개업을 하기 전 최 씨는 여러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시장조사를 했다. 그는 “7년 동안 양곡 도매점에서 일하면서 예비상인들의 개업 준비를 도와줬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수도권 전통시장만 서른 군데도 넘게 가봤습니다. 그중에 역곡북부시장이 통로가 가장 넓고 깔끔했어요. 상인회 조직도 탄탄했고요. 게다가 마침 시장 내에 양곡 전문점이 없었죠. 부천에는 서울이나 인천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최 씨는 잡곡 판매에 페트병을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냈다. 페트병에 양곡을 담을 경우 보관이 편하고, 벌레가 생기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또 페트병에 넣은 잡곡을 진열하면 점포가 더 청결해 보이는 효과도 생긴다. 그는 “젊은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더불어 원산지와 잡곡의 효능 등의 정보를 제공하면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의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얼마에 팔고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가격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건 고객들이 믿음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는 품질입니다. 또 우리는 대형 마트와 달리 고객이 원하는 무게만큼 퍼서 담아주고, 덤을 더 드립니다. 전통시장에만 있는 정(情)이 덤이잖아요. 이런 덤이 바로 경쟁력입니다.”  

부천=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청년사장#부천#역곡북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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