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40일 동안 잠행 후 지팡이를 짚고 평양의 위성과학자주택지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을 두고 정보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왜 ‘무리’를 해야 했다는 것일까.
정부 안팎에서는 신병 이상설을 잠재우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하지만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일(10일)에 맞춰 완공하라고 지시한 위성과학자주택지구의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김정은, 건재 과시 위해 서둘러 등장한 듯
김정은이 허리 높이의 검은 지팡이를 짚고 공개 행보를 ‘서둘러’ 시작한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실각설, 중병설 등을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 당국자는 14일 “실각설 등을 불식하려고 생각한 듯하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 것에 대해서는 “전례가 없었던 것 같다. (완쾌된 모습을 보이는 대신) 서둘러 나왔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당장 남북 2차 고위급 접촉이 예고된 상황에서 등장함으로써 자신이 직접 남북관계를 주도한다는 뜻을 나타냈다는 관측도 나온다.
9월 3일 모란봉악단 공연관람을 마지막으로 잠적하기 전부터 김정은은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을 공개했다. 14일 북한조선중앙TV는 모두 네 차례 방송을 통해 김정은이 시찰 중 지팡이에 기대 비스듬하게 서 있거나 한쪽으로 몸이 기울어진 채 걷는 사진을 그대로 내보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해 북한 주민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감성적 정치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과학기술강국’과 ‘미사일’…정치적 메시지용
김정은이 첫 공개 행선지로 과학기술단지를 선택한 것은 좋은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김정은이 10일 당 창건 기념일까지 완공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위성과학자주택지구가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김정은이 은정과학지구 내 과학자주택단지를 건설하라는 지시에 따라 3월 착공한 곳. 은정과학지구는 인공위성과 장거리 미사일(로켓)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북한의 주요 과학기술연구단지와 과학자 주택으로 구성돼 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핵과 경제 병행 발전(병진노선)에 필수인 위성과학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을 지속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모처럼 대화 기조가 조성됐다고 해도 남북관계가 악화될 경우 언제든지 ‘미사일 카드’를 꺼내 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 온 서해 동창리 미사일 기지 발사대 증축공사를 끝냈다. 정치적으로 결단한다면 올해 안에도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가인 국제위기그룹(ICG)의 대니얼 핑크스턴 박사는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오랜 휴식을 끝낸 뒤 단순히 주택단지만을 둘러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현장에서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한) 위성기술 및 장거리 미사일 관련 현황 브리핑을 들었을 것이다. 가장 관심 있게 챙기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대북 정보 소식통은 “김정은이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막 완공된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근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10위권 진출을 계기로 체육강국이 완성된 데 이어 과학기술강국마저 실현했다고 보여주려는 대내용 선전전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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