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상복이 바닥에 끌려 빗물에 젖었다. “아빠 언제 일어나?”라고 묻는 손녀의 얼굴을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없이 쳐다봤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와 할아버지의 붉어진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언니와 장난을 쳤다. 아빠를 보내는 마지막 자리. 아이들은 여전히 ‘아빠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20일 오전 7시경 경기 용인시에 있는 강남병원 장례식장 앞. 여섯 살 딸, 다섯 살 아들, 세 살 딸은 그렇게 아빠 윤모 씨(35)를 하늘로 보냈다. 이날 윤 씨의 발인에는 그의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윤 씨의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친지의 품에 안겨 아들의 영정사진을 따르던 윤 씨의 어머니는 한 걸음 내딛고 흐느끼고 다시 걷다 멈춰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하지 못했다. 정적을 깬 것은 홀로 아이들을 키울 윤 씨의 아내. “여보, 당신 없이 더 이상 어떻게 살아”라고 나지막이 가슴속 한마디를 꺼냈다. 컴컴한 하늘에서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같은 날 오전 10시경 경기 성남시 성남중앙병원 앞에서는 장모 씨(39·여)의 발인이 엄수됐다. 장 씨의 관이 운구차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연신 왼쪽 가슴을 두드렸다. “아이고 아이고”를 입 밖으로 뱉어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운구차 앞에 선 그의 아버지는 “아이고 우리 아기 불쌍해서 어떻게 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시간 뒤 같은 장소에서 김모 씨(27·여)의 발인도 진행됐다. 4남매 중 장녀였던 그의 영정사진을 동생들은 말없이 뒤따랐다. 가족끼리 “누나가 가는 마지막 길에서는 절대 울지 말자”고 약속했다던 김 씨의 남동생은 말없이 웃고 있는 누나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가족, 친구 등 10여 명 누구도 소리 내지 않았다. 김 씨의 어머니도 딸의 관을 말없이 바라보다 남편과 함께 운구차에 탑승했다.
19일(1명)에 이어 20일 서울·경기 지역 병원 장례식장 4곳에서는 윤 씨 등 희생자 6명의 발인이 엄수됐다. 남은 희생자 9명의 장례 절차는 사고대책본부와 유가족협의체가 20일 보상 등에 합의함에 따라 21일 모두 진행될 예정이다. 대형사고 발생 5일 만에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8일 유가족협의체 한재창 간사(41)는 “이 사고를 국가적 이슈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보상과 관계없이 장례를 치를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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