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는 당청 관계]
金, 개헌론에서 서둘러 발 뺐지만… 靑 “金, 고도의 정치적 계산” 불쾌
靑 역공으로 당분간 갈등 잠복… 언제든 다시 권력충돌 가능성
청와대가 ‘개헌 봇물’ 발언을 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공개 비판한 것은 그의 발언에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김 대표 체제 출범 100일을 맞는 21일이기도 했다.
여권에선 ‘현재 권력’과 ‘차기 권력’의 충돌이라는 일반적 해석도 나오지만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서로 다른 정치스타일이 결국 당청 갈등으로 불거졌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것을 지켜내는 ‘수비형 리더십’을, 김 대표는 상대 것을 빼앗아오는 ‘공격형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이 많다. 박 대통령이 원칙을 중시한다면 김 대표는 타협을 우선한다.
○ 100일 만에 불거진 ‘당청 갈등’
이명박 정부 당시 당청 갈등이 물 위로 떠오른 것은 집권 4년 차가 시작된 2011년 1월이었다. 당시 안상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안 대표의 조기 퇴진→‘비주류’ 홍준표 대표 체제 출범→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홍 대표 취임 5개월 만에 낙마→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등 새누리당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었다.
당시 안 대표의 반란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이는 김무성 당시 원내대표였다. 여권의 두 축인 당청 갈등이 불러올 역풍이 간단치 않음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정당정치 경력 30여 년 차의 김 대표가 개헌론의 후폭풍을 몰랐을 리 없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에게 공개 사과까지 한 김 대표를 뒤늦게 몰아붙인 것도 김 대표의 행동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불쾌감 때문이다.
김 대표가 서둘러 발을 뺐지만 개헌 논의라는 이슈 제기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과는 거뒀다는 평가가 많다.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처럼 개헌론에 반대하며 김 대표 견제에 나서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김 위원장은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동국대 총동창회가 주최한 ‘동국포럼 2014’에서 “욕을 먹는 국회의원들끼리 총리, 장관 자리를 나눠 갖는다면 국민이 용납하겠느냐”라며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나 같은 것으로, 대통령보다 국회의원들이 더 욕을 먹는 현실에서 의원들이 뽑는 총리나 장관을 국민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동지적 관계’가 되기에는 너무 먼 두 사람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올해 7월 당 대표 경선 당시 김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 당청 갈등으로 박근혜 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권 도전 출마 포기 선언을 하라는 집요한 요구도 있었다. 그때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며 몸을 낮췄다.
100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1차 충돌’이 빚어진 것은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에 쌓인 애증 관계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 1월 김 대표를 사무총장으로 발탁하면서 두 사람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박근혜 비대위’의 시험대였던 2012년 총선 당시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박 대통령 곁을 지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김 대표를 ‘2인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명박 정부 초기 특임장관직을, 2009년 원내대표직을 제안 받았으나 박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고 2009년 세종시 수정안 문제에 의견을 달리하면서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 김 대표, “절대 싸울 생각 없다”
당장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울 것 같지는 않다. 이날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전체회의에 깜짝 등장한 김 대표는 “언론이 대통령하고 싸움 붙인다고 난리 치는데 절대 싸울 생각이 없다. 한몸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역공에도 김 대표는 ‘로키(low key)’ 행보로 가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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