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1945년 10월 24일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세워진 유엔의 창립일이다. 그런가 하면 85년 전인 1929년 10월 24일에는 근대사 최악의 경제위기인 미국 대공황이 촉발된 증시 대폭락이 있었다. 물론 그때와 견줄 위급 상황은 아니더라도 최근 경제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와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공황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응급실로 가야 할 ‘급성질환’이었고 지금은 ‘저성장 저물가의 고착화’라는 ‘만성질환’이다.
글로벌 디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인플레가 고혈압이면 디플레는 위험 수준의 저혈압이다. 더군다나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는 사상 최초로 미국과 영국의 금융위기 대응 가상훈련이 있었다. 경기 회복세가 가장 견실한 양국의 해당 기관 수장들까지 참가한 이번 합동훈련은 다른 나라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장기 침체에다 유럽의 기둥인 독일 경제의 급속한 냉각으로 유로존 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 불안이 겹친 남미는 더욱 어렵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거의 디폴트 상태고 브라질도 휘청거리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푸틴 정부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으면서 곤두박질쳤다. 일본은 소비세 인상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지방 부채, ‘그림자금융’ 등 잠재 리스크를 가진 중국의 감속 추세와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락으로 신흥국 전망은 악화일로다.
국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산업생산 위축과 기업투자 감퇴로 실물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지 오래다. 세월호 사고 이후 지난 반년간 표류한 정치로 규제 개혁과 경제 활성화 대책은 탄력을 잃었다. 수출 증가세 감소와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외국인투자가의 ‘탈(脫)코리아’로 주가는 작년 말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금융권 불황은 최악이고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핵심 제조업마저 중국 기업의 부상(浮上)과 일본 기업의 부활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는 급성질환에 유독 강하지만 만성질환에는 약한 것 같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대형 위기는 가장 성공적인 조기극복을 기록했다.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응급처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각 증세가 덜한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구조개혁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이 문제다. 체질 개선과 체력 강화를 통한 근본적인 치료를 늦추다 보니 위기는 반복된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이유다.
위기 상시화 시대의 생존전략은 자명하다. 첫째, 정치 쇄신이다. 정치가 바로 서야 경제가 산다. 대내외 환경 변화기에 취약한 국가들은 정치시스템의 비효율이란 공통점을 가진다. 반대로 이 와중에 잘나간 나라도 있다. 인도는 올해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안정적 국정운영과 과감한 경제개혁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외국인투자가 대폭 늘었고 주가도 크게 뛰었다. 최우선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둘째, 선제적 정책조합이다. 위기상황에서 정책 대응은 ‘신속’하고 ‘과감’하며 ‘충분’해야 한다. 과잉대응(오버슈팅)의 부작용은 당연히 경계할 일이다. 그러나 활력이 극도로 떨어진 ‘중립기어’ 시기에는 강도 높은 정책조합의 시너지가 없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지난주 한국은행 금리인하에 대한 냉랭한 시장 반응은 그리 놀랍지 않다. 당면한 ‘뉴 노멀’ 시대는 중앙은행의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한다.
셋째, 위기의식과 책임의식 공유다. 과도한 위기감 조성은 피할 일이지만 도전적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과 공감대 없이는 국민 역량의 결집이 불가능하다. 유럽 재정위기가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고령화시대에 연금 개혁 같은 국가 미래를 위한 숙제를 미룰수록 다음 세대의 부담과 피해는 감당할 수없이 커진다. 고통 분담의 국민적 의지, 공직자의 사명감, 진취적 기업가정신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어렵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늘 해냈다”라는 익숙한 말이 계속 통할지 의문이다. 기적 같은 지난 반세기였지만 기적은 쉽게 반복되지 않는다. 국제질서는 급변하고 도처에 지뢰밭이다. 소모적 정쟁으로 낭비할 시간은 없다. 아마도 이미 골든타임은 지났고 이러다간 우리나라가 벌써 역사적 정점을 넘어서고 있을지 모른다. 국가위기 대응력과 기업 경쟁력 강화가 절박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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