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비리 뉴스 본 청소년들 “어른들도 하는데 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8일 03시 00분


[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1> 부패없는 대한민국, 지금 나부터
中 미래세대 교육 제대로

“부패는 부패를 먹고 자란다.”

반부패 운동가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고의든 실수든 한 번 부패에 발을 들인 사람은 부패를 감추기 위해 또는 부패가 주는 이익에 빠져 제2, 제3의 부정을 저지른다는 뜻이다.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은 ‘위로부터의 부패 척결’에 매진했다. 김영삼 정부는 강력한 사정 활동에도 불구하고 공직사회의 뇌물 관행을 끊지 못하고 측근 비리에 발목이 잡혔다. 그 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도 공직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부패방지책을 내놨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 역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구호 아래 부패 척결에 나서고 있지만 ‘관피아’ ‘낙하산’ ‘뇌물’은 단골 뉴스로 나온다.

반부패 운동은 위가 아닌 아래, 미래 세대에게 있다. 청소년에게 부정부패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부패뉴스 노출 학생들이 부정행위에 더 가담”

동아일보는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서울 상암중학교 14∼16세 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의 부패 민감성과 교육으로 인한 부정부패의 가변성 등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과 실험을 진행했다.

이달 14일 상암중학교 1학년 교실. 실험을 위해 모인 학생 60명은 두 교실로 나뉘어 서로 다른 영상을 각각 시청했다. A그룹은 ‘국가 연구개발비의 부정한 사용이 밝혀졌지만 징계를 받은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거나 ‘친인척을 부정 채용하고도 가벼운 징계에 그쳤다’ 등 부정부패와 솜방망이 처벌을 고발하는 뉴스 영상을, B그룹은 부정부패와는 무관한 휴대전화 판매원 출신 성악가 ‘폴 포츠’의 성공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이번 실험은 청소년들이 사회의 부정부패 뉴스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서로 다른 영상을 본 그룹이 똑같은 가상 시나리오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시나리오 문항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중간고사를 마친 기념으로 친구와 볼 영화를 찾던 중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발견했을 때, 두 번째는 중간고사를 망쳐 기말고사에서 만회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험 감독자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각각 불법 다운로드와 부정행위를 할 것인지 물었고, 과제엔 이름을 쓰지 않도록 해 익명성을 보장했다.

두 그룹이 써낸 답변은 큰 차이를 보였다. 불법 다운로드와 시험 부정행위를 하겠다고 대답한 학생 수는 부패뉴스를 본 그룹에선 30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13명이었다. 반면 폴 포츠의 영상을 본 학생은 3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곽 교수팀이 부패 감수성을 통계학적인 수치로 환산한 결과 부패뉴스를 본 학생그룹(0.5)이 그렇지 않은 학생그룹(0.1)보다 5배나 부정행위를 더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 “어른들도 하는데 나만 정직하면 손해”

학생들에게 부정행위를 결심한 이유도 적게 했다. 불법 다운로드와 시험 부정행위 등에서 모두 “어른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불법 다운로드를 하겠다고 답한 학생 중에는 “어른들도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데 나만 돈 내고 보기 아깝다”, 시험 부정행위에는 “나만 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한다”는 이유를 각각 들었다. 이외에도 “딱히 나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성적에 대한 부모님의 압박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나왔다.

한국투명성기구 유한범 사무총장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기는 성적만 강조하는 입시교육과 부패 관련 뉴스의 홍수 속에 아이들 스스로 부패에 무뎌지고 타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불법을 통해서라도 부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답한 청소년의 비율은 40%로 같은 답을 한 성인(31%)을 훨씬 웃돌았다. ‘부패한 사람이 빨리 출세한다’고 답한 청소년(52%)도 절반이 넘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이들의 ‘감수성’은 부패 환경뿐만 아니라 청렴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교실로 찾아가는 투명학교’라는 설문을 진행하는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에 따르면 반부패교육을 받은 전후 아이들의 정직 지수가 25개의 모든 항목에서 눈에 띄게 향상됐다.

투명학교 수업의 가장 큰 특징은 ‘부정 체험’이다. 국자만 이용해 가능한 한 많은 탁구공을 상자로 옮겨야 하는 게임에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을 사용하고 땅에 떨어진 공을 주워 담는 부정행위를 한다. 게임을 한 뒤 비슷한 부정행위가 담긴 영상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영상 속 모습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멋쩍어하면서도 체험을 통해 부정부패에 더욱 관심을 갖고 투명학교 수업에 임하게 된다.

지난해 이 교육을 받은 A중학교에서는 ‘숙제를 인터넷에서 베껴 내도 된다’는 학생이 교육 전 30%에서 교육 후 16%로, ‘불법 다운로드를 해도 된다’는 학생은 31%에서 18%로 크게 줄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정기철 부장은 “어른들은 체면 때문에 자신의 부정행위를 고치길 망설이지만 청소년들은 거부감이 훨씬 덜하다. 청소년 시기 부정부패에 대해 학습적인 체험과 고민을 하는 것은 성인이 된 뒤 반부패 습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장관석 기자
#공무원 비리#국가대혁신#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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