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계약 체결때까지 3차례 회의 열어 직접 구입 의결
“무관” 주장했지만 책임론 부상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 시절 해군 수상구조함인 통영함의 고정음파탐지기(소나)를 구매하는 과정 전반에 관여한 징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통영함의 소나 입찰 과정이 대표적 방산(防産) 비리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황 총장은 “사업 추진은 해당 사업팀이 했다”고 주장해 왔다.
4일 방위사업청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부산 사상)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황 총장은 2008년 12월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취임한 뒤 2009년 12월 미국 H사와 소나 인수 계약을 체결할 때까지 세 차례 주요 결정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황 총장은 2009년 1월 9일 사업관리실무위원회 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면서 소나를 포함해 통영함에 탑재할 장비 목록과 이를 구매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같은 해 3월 31일 회의에서는 소나를 외국에서 사오는 방안을 의결했고, 같은 해 11월 25일 최종 기종선정 회의에서는 미 H사의 소나를 구입하는 방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H사의 소나는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시험평가를 한 해군은 H사가 제출한 서류를 평가해 ‘전투용 적합’ 판정을 내렸다. 군 관계자는 “H사의 말만 믿고 적합 판정을 해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해군은 H사의 소나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린 보고서를 실무위에 올렸고, 해군 출신 위원들로 구성된 실무위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H사 제품을 최종 선택했다.
이에 대해 해군은 “황 총장이 방사청 함정사업부장 취임 이전에 통영함의 작전요구성능(ROC)이 결정됐고, 시험평가 결과 적합 판정이 나왔기 때문에 황 총장의 책임과는 무관하다”라고 해명했다.
▼ 소나 구입비 지나치게 낮춰 단독입찰 유도 의혹 ▼
유럽3社 입찰 포기… 美업체에 낙찰
해군 관계자는 “해당 사업도 부장이 아닌 담당 과장에게 전권이 주어졌다. 통영함 비리는 어디까지나 실무자 개인의 비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선 황 총장이 사업 입찰공고(2009년 4월 23일)부터 본계약 체결(2009년 12월)까지 사업관리실무위원회 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며 주요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황기철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통영함 문제를 단순히 실무자 개인 비리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크지 않느냐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해군 수상구조함인 통영함의 선체고정음파탐지기(소나) 구매 사업에 관한 방위사업청의 사업설명회 후 유럽의 유력 업체 3개사가 입찰을 포기한 사실도 밝혀졌다. 2009년 4월 30일 방사청이 개최한 소나 도입 관련 사업설명회에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3개 업체를 비롯해 미 H사와 W사의 컨소시엄 등 4개 업체가 참여했지만 설명회 뒤 입찰에는 미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했다.
유럽 업체들만 입찰을 포기한 것을 두고 방산업계에선 방사청이 소나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비를 지나치게 낮게 설정해 유럽 업체들의 경쟁입찰을 원천적으로 막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사청이 책정한 소나 구매 사업비 규모가 업체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거론됐다”며 “당시 유럽 업체의 소나 한 대 가격이 150억∼200억 원이었는데 방사청의 예상 목표가는 그것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니 입찰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독 입찰에 응한 업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계약부터 체결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입찰에 참여한 유럽 3개 업체의 경우 실제 소나를 생산하는 곳이었지만 미 컨소시엄은 체계 통합 업체인 H사가 주도했다. H사는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 회사로, 관급장비 납품업체의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해 생산업체인 W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W사는 그동안 군수보다는 민간장비 납품을 전문으로 해왔다. 군 관계자는 “특정 업체를 선정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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